성경적인 회개란?

      홍성철 박사
  (세계복음화연구소)

한글성경에서 회개(하다)는 단어가 구약에서 3번, 그리고 신약에서 57번 나온다. 횟수만으로 볼 때 회개는 다분히 신약적 용어인 것 같다. 그러나 구약에 나오는 회개를 히브리어로 보면 신약 못지않은 구약적 용어인 것을 알 수 있다.

회개가 포함된 말씀을 한 곳 인용해보자.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심판할지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겔 18:30).

이 말씀에서 ‘회개하다’의 히브리어는 슈브(בושּׁ)인데, 구약에서 자그마치 1,056번이나 나온다.

이 단어의 기본적인 의미는 ‘돌아오다’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떠난 이스라엘 백성은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그 심판에서 벗어나려면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돌아오는 것이 진정으로 회개하는 것인가? 선지자 요엘은 돌아오는 방법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욜 2:12-13).

이 말씀에서 두 번씩이나 반복된 ‘돌아오다’는 ‘회개하다’를 뜻하는데, 그 방법은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찢으라’는 것이다.  

이런 회개의 방법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그 유래는 속죄일(욤 키퍼)인데,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이 범한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매년 7월 10일에 하나님이 좌정하신 성막에 모여서 회개해야 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인하자.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희는 성회를 열고 스스로 괴롭게 하며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고” (레 23:27).

이 말씀에서 ‘괴롭게 하며’는 회개의 방법인데, 금식과 죄의 고백을 함축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철저하게 회개했던지 7월 1일, 곧 나팔 절기에 모여서 10일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두려움의 나날(The Days of Awe)을 보냈다.

속죄일에는 대제사장이 야훼의 이름을 10번 불렀는데, 그때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죄를 고백했는데 모두 10번이나 했다. 10이 완전을 가리키는 숫자임을 감안하면, 그들은 철저하고도 완전하게 회개했다는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속죄일의 회개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들에게 세례 요한은 단도직입적으로 회개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마 3:1-2).

예수님도 제일 먼저 선포하신 메시지가 ‘회개하라’였다.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마 4:17).

그분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는 회개의 메시지를 이렇게 재확인하셨다.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마 11:20).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이 회개는 속죄일의 회개를 연상시키고도 남는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도 전도하면서 외친 메시지는 당연히 회개였다.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막 6:12).

오순절 날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은 베드로 사도도 역시 절기를 지키려고 모인 유대인들에게 회개의 메시지를 전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행 2:38).

그 회개의 메시지는 자그마치 3,000명이나 그리스도 앞으로 돌아오게 했다. 물론 회개만으로 구원받을 수 없기에 믿음도 따라야 한다. 그렇지만 철저한 회개를 전제로 하지 않는 믿음은 진정한 믿음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요즘처럼 얄팍하고 감상적인 믿음이 만연한 때, 성경적인 회개를 다시 음미해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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