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세례교인 수 총회비 부과’ 규정은 주님의 명령이요 교회의 사명인 생명회복운동 목회에 큰 걸림돌로 참담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현 상황에 무감각한 우리가 더 문제다. 왜 우리는 본질이 아닌 곳에 에너지를 소비하는가? 왜 우리는 성경적 단순 논리를 복잡하게 만들어 스스로 모순된 행정의 함정에 빠지는가.

왜 우리는 세례교인 수 산출을 근거로 한 총회비 부과 규정을 만들었는가. 세례교인 수에 비례한 총회 대의원 많이 보내기 위한 지방회의 무분별한 정치세력 경쟁의 차단 조치인가.

이에 세례교인을 정리해 얻은 것은 소수교회가 총회비 아낀 것이고, 대다수의 교회가 힘들여 만든 세례교인을 이런저런 명분으로 제적 처리하고, 더욱 안타까운 것은 성도에 대한 애착을 잃었다는 것이다.

해병대의 자존감이고 자부심인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란 말이 있다. 이 말처럼 “한번 성결교인은 영원한 성결교인”으로 세우는 애착목회, 애착행정의 교단이기를 소망한다.

더 애처로운 것은 한 영혼구원을 위해 세워진 지역의 작은교회, 미자립교회에도 세례교인 수 총회비 규정에 해당되어 자립도 힘든 교회에 엄청난 무게의 짐을 지게하는 앞뒤가 안 맞는 무책임, 나몰라 행정 아닌가. 우리 속담에 “벼룩이 간을 내먹지”란 말이 있다.

소속 지방회에서는 지방회비 면제 대상인데 총회비는 내야하는 상황이다. 참 아이러니하다. 바라는 간절한 소망은 교회를 살리고, 성도를 지키는 생명운동의 정책과 행정이 핵심 주제가 되어야 한다.

제116년차 총회에 참석하는 모든 대의원은 교단과 교회와 나라의 미래, 다음세대의 미래를 위해 우리가 처해 있는 현 상황을 깊이 있게 조명하고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발길을 돌려 바른 방향을 찾아가자.

제115년차 총회에서 모 대의원이 세례교인 수로 총회비 산출의 그 동안의 피해를 인식하고 새 개정안을 내놓았는데 더 복잡한 방식, 경상비+세례교인을 양비례로 산출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발상은 오히려 세례교인 산출보다 더 요령을 꾀하게 만드는 안이다. 경상비+세례교인의 유,불리와 상황에 따라 플러스 마이너스를 꾀하게 하는 세상의 이해타산법으로 잘못된 발상이다.

구원의 복음 탁상, 생명을 살리는 목회의 탁상 위에 이해타산을 구하는 계산기는 치우고, 생명을 구하는 복음의 말씀만 올려놓자. 복음의 본질, 교회의 본질, 목회의 본질로 생명운동, 생명살리기운동에 교단과 교회, 총회 대의원 모두가 매진하자.

특히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되어가는 지금, 교회 존재 자체가 위태한 교회가 많은데 영적 생명, 영적 재산인 세례교인에 그 어떠한 단서조항도 연계하지 말자. 단서조항이 있다면 오직 믿음 한가지 뿐이다. 총회 대의원 파송도 세례교인 수에서 해방시키자.

경상비로 하지도 말자. 지역별로 격차가 심하여 평등하지도 않으며 이도 저도 요령이 생길 것은 뻔하다. 이에 제안한다. 교단과 지방회에 등록되어 있는 교회 수에 의거하여 총회대의원 파송을 연구해 보자.

세례교인과 경상비 보고는 현 상황에서는 지역별로 격차가 심하여 불완전하다. 지방회에 등록된 교회는 완전하고 모든 지방회가 당당하고 평등할 것이라 생각한다.

교단의 미래와 발전, 그리고 연합과 화합을 위해서, 교회 간에 지방회 간의 불신 회복과 신뢰를 잃어버린 기독교의 회복을 위해 도‧농‧어촌교회가 함께하는 상생목회가 절실한 때, 세례교인이 많은 도시 지방회를 비롯한 우리 모두가 복음의 본질인 생명회복운동과 공의를 위해 기득권을 버리고 상생목회에 눈을 돌려 모두가 공존하는 성결교회의 본질과 정체성, 그리고 정의와 공의가 흐르는 교단을 세워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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