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사람이 북극해의 깊이를 재고자 동아줄을 내렸다. 자기 나름대로는 긴 것으로 준비했지만 북극해의 밑바닥에는 닿지를 않았다. 다음 날에는 더 긴 동아줄을 준비해서 내렸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다음 날에도 또 그다음 날에도 결과는 실패였다. 그 사람 프리드쇼프 난센(1861~1930)은 자신의 일기장에 “북극해의 바다는 하나님의 사랑 같다. 그 깊이를 잴 수 없는 바다이다.”라는 메모를 남겼다.

▨… 극지 탐험과 동물학을 공부해서 대학의 교수 자리에 나아간 난센의 신앙심이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으로 증거할 만큼 투철했는가는 판단할 이유가 없다. 제1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러시아에 억류된 42만 여명의 포로를 송환해오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진 그의 열정은 난센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한 사람임을 자 증하기 때문이다.

▨… 그 난센이 자신의 평생을 상징하다시피하는 명언 하나를 남겼다. 극지 탐험의 어려움이나 42만 여명의 포로를 송환해오려고 한 자기희생에 동지가 있음을 드러내는 선언이었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위대한 일은 협력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라는 지극히 일상적인 체험의 정리였다. 그는 자신의 노년을 굶주림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쏟아부었다. 난센은 192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으며 그 상금은 전액 난민구제 사업에 기부되었다.

▨… 하나님 앞에 진실하기를 다짐하며 또한 성결할 것을 선언하는 우리 교단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정기지방회가 그 막을 올리고 있다. 지방회를 자신의 교단 정치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구시대적 행태는 이미 모두 척결되었으리라고 믿고 싶다. “세상의 모든 위대한 일은 협력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라는 난센의 삶의 좌우명을 외면하는 지방회 대의원은 한 사람도 없으리라고 단정하고 싶다.

▨… 코로나, 오미크론의 팬데믹 영향으로 모든 교회들이 어려움을 겪지만 그 어려움의 크기는 교회의 크기에 역비례 현상으로 나타나 작은 규모의 교회일수록 어려움의 가중치는 더 무거워지고 있다. 우리 교회도 어려운데 어쩌라는 말이냐고 발을 빼려고 한다면 교회가 협력하여 하나 되는 ‘위대한 일’은 초대교회에서나 가능한 설교용 구호로 전락해버릴 것이다. 우리 교단의 교회들이 북극해의 바다 깊이 같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하고 있다면, 코로나 팬데믹 현상을 겪는 지금이야말로 그 사랑을 드러내야 할 때아닐까. 총무직 따위에나 눈독 들이는 지방회는 잊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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