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에는 왕정 시대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수많은 텍스트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성찰하지 않았고, 역사의 교훈을 수용하지 않다가, 모든 파국과 불행 가운데서 미래의 왕에 대한 열망과 기다림을 유산으로 간직하며, 정의를 실현하고, 공정과 축복과 평화와 자유를 가져 올 왕에 대한 열망을 가졌다.

그러나 구약 성경 안에는 왕정에 대한 비판이 기본적인 요소로 자리하고 있다. 구약성경에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왕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최고의 자리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왕의 존재가 이스라엘에는 없었다.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국가의 형태를 취하지 않았다.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지기 전에 이스라엘은 지파들의 연합이었다. 그러나 훗날 왕정으로 대체되었다. 왕정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일종의 실험단계였다.

결국 이 정치체계는 실패로 끝나고, 왕국이 몰락하고, 유배의 시련을 겪으면서 이스라엘의 예언자들과 신학자들은 이 왕정시대를 뒤돌아보고, 숙고하면서 아주 신랄하게 비판하며 새로운 왕, 메시아를 기다렸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열망하며 기다리면서 예상하였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왕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다.

새로운 왕, 예수이시다. 그는 절대적인 비폭력과 다른 이들을 위한 봉사가 통치방식이셨고, 한 분 이신 하나님께 헌신하고, 하나님께 속한 백성을 모아 영으로 다스리셨다.

폭력에 의지하지 않고, 권력에 대한 집착은 아예 없이, 다른 이들을 위한 헌신 외에는 다른 것을 추구하지 않는 백성을 모으셨다.

그분은 모든 그릇된 권력과 통치의 민낯을 드러내고 진정한 힘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셨다.

국가도 필요하고, 법도 필요하고, 경찰력도 필요하다. 심지어 세계 경찰과 같은 기구도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자신을 통치자로 내세우는 권력자들과 그들의 힘자랑으로 세상이 파멸될 것이다.

2022년 3월에 있을 대선을 앞두고 혼란스럽다.  진정한 평화를 위하여 세상 통치와 대비되는 참된 왕의 모습이 절실히 요청된다.

독재자들은 자신의 광기를 대중에게 가용할 수 있다. 협박과 폭력, 압제와 강압, 테러를 통해 자신의 사상이나 이념, 주장과 생각을 밀어붙일 수 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추종자들이 한마음으로 일치단결하는 것이다. 중국의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 캄보디아 폴포트 정권의 지식인 학살의 경우를 보라. 그들은 조직과 억압을 통해서 일치를 달성한다.

쿠바의 카스트로와 체게바라가 주도했던 시대 이후를 생각해 보자. 킬링필드의 주도자 폴 포트는 캄보디아의 독립운동가, 노동운동가, 군인, 정치인이자 공산주의 혁명가이다.

캄보디아의 공산주의 정당이었던 크메르 루주의 지도자이자 1976년에서 1979년까지 민주 캄푸치아 공화국의 총리였다. 그는 통치를 위하여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 현대 세계에서 왕정 제도를 유지하는 나라는 영국, 일본, 태국 등 소수의 국가들이다.

아직도 많은 독재자와 압제자가 통치자로서 국가를 다스리고,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한 통치자들의 칭호가 무엇이든 그들은 국민을 착취하고, 자유를 억압하고, 인권을 짓밟고, 복지 향상보다는 첨단무기 개발에 열을 올린다.

군비확장 때문에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이 희생을 당하고 있다.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여 우리를 다스리시옵소서! 우리가 따르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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