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기 보다 경청하는 자세 요구돼
일상에서 비상상황 준비자세 필요
민감성ㆍ통찰력은 상담자의 필수 요소

이희철 교수(서울신학대학교 상담대학원)

코로나 팬데믹이 만 2년 이상 지속되면서 많은 교인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을 비롯한 영적, 정신적 고난을 겪고 있는 이들에 대한 위로와 돌봄이 필요한 상황이다. 새해에는 고난받고 있는 자들을 어떻게 상담하고 돌볼 것인지에 대해 목회상담 전문가의 의견을 제안한다.

오래 전에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가 필름이 끊기거나 정전이 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그러면 극장 안에는 한바탕 소란이 벌어진다. 고함을 치거나, 휘파람을 불며 항의하는 사람도 있고, 기회를 엿보고 연인에게 키스를 하는 사람도 있다.

막간을 이용해 오징어와 땅콩을 파는 상인도 있다. 여하튼 한바탕의 소란은 잠깐의 축제와도 같다. 고함을 치는 사람, 혀를 차는 사람, 웃는 사람, 조용히 기다리는 사람, 나가는 사람 다양한 모습의 축제가 벌어졌다.

코로나19로 한바탕 소란이 벌어지고 있다. 이 소란은 누군가에게 축제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참혹한 재난이다. 모든 것을 휩쓸어 가는 엄청난 재난일 수 있다. 병원에 격리되어서 죽어가는 가족의 병상을 지키지도 못한다.

코로나19로 인한 주검을 화장해서 장례식을 해야 한다. 소상공인은 영업장 문을 닫고 배달하는 오토바이를 타야한다. 학교선생님은 입학생을 졸업할 때 처음 본다. 일상이 깨지면 사람들은 어수선해진다.

일렬로 행진하던 개미군단이 모래폭탄을 맞으면 혼비백산하듯이 일상생활의 패턴에서 벗어난 사람들과 기관들은 혼돈상태에 빠진다. 심리적으로 불안해지거나 우울상태에 처해진다.

코로나시대 목회 상담이란 무엇인가?

이러한 코로나 시대에 목회상담은 필요한가? 코로나시대가 막을 내린 후 다가올 포스트코로나시대를 준비하면서 목회상담자는 어떻게 대처하여야 하는가?

목회상담이란 무엇인가? 목회상담을 목회자를 상담하는 행위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목회자가 성도에게 하는 상담을 목회상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목회상담은 교회공동체가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행하는 돌봄 사역이다. 교회공동체가 주체가 되어서 행하는 돌봄이다.

목회상담은 기독교를 대표하는 사람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구속자로 고백하는 사람들이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행하는 돌봄이다.

어떻게 돌보느냐? 기독교전통의 자원, 즉 성경, 기도, 예전, 성물 등을 사용하여 고통 속에 있는 사람에게 적절한 돌봄을 제공하는 행위이다.

현대 목회상담은 심리학, 사회학, 인류학, 의학 등의 현대학문과 신중한 대화를 하면서 기독교 자원을 이용하여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과 그들이 속한 공동체를 돌보는 행위이다.

포스트 코로나시대를 준비하는 목회상담자는 고통 속에 있는 사람과 공동체를 돌보기 위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목회상담을 해야 한다.

눈을 뜨고, 귀를 여는 자세 필요

작가 최인호는 죽기 전에 쓴 수필에서 다음과 같이 기도문을 썼다. “주님, ‘알고 있는 모든 것으로 눈이 멀어 있는 저’를 볼 수 있도록 제 눈에 흙을 개어 발라주소서. 그리하여 ‘알고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를 허락해주소서” (136P, 최인호의 인생)

교회는 무엇으로 눈이 멀어 있는가? 목회상담자는 무엇으로 눈이 멀어 있는가? 정보, 자본, 명예 등으로 눈이 멀어 있어서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가?

4차혁명, 메타버스, 경제혁명, 교회부흥이라는 거대한 목소리에 잠식되어서 교회와 목회상담자는 들어야 할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지는 않는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렘5:9)을 보게 하고 듣게 해야 할 교회가 눈이 멀고 귀가 닫혀서 예수 그리스도가 어디에 계신지, 누구와 함께 계신지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지는 않는가? 에모리대학교에서 수학할 때 터너 빌리지라는 기숙사에 살고 있었다.

사람들이 왕래하고 시끄러운 대낮을 지나서 적막이 흐르는 늦은 밤에 기숙사에 혼자서 공부하고 있었다. 갑자기 적막을 깨는 소리를 들었다. 기차소리였다. 기숙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기찻길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 때서야 알게 되었다.

시끌벅적하고 큰소리가 난무한 대낮에는 듣지 못하였지만 모두가 소리를 낮춘 적막한 밤에 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목회상담자는 말하기보다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소리를 지르기보다는 들리지 않는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한다.

작은 소리를 듣기 위해서 ‘알고 있는 것’을 멀리하고 모른다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안다고 생각하면 말하려고 하고 가르치려고 한다. 많이 알고 있는 자, 많이 가진 자를 숭배하고 인정하는 세상과 멀리하려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세상에서 인정받고 싶은 유혹을 뿌리쳐야 한다. 모른다는 자세를 취해야 경청하는 자세를 가질 수 있다. 모른다는 자세를 취해야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려고 한다. 많이 가진 자는 많이 가진 자와 어울리기 쉽다.

많이 아는 사람은 지식인과 소통하기가 편하다. 목회상담의 대상은 가난한 자, 무지한 자와 같이 사회적 소외를 받는 사람들이다.

‘미친 사람’으로 사회에서 낙인된 사람들이 목회상담의 대상이다. 그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모른다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재난사회를 돌보는 목회 상담

언젠가 코로나시대는 포스트 코로나시대, 위드코로나시대로 전환된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에도 다른 전염병이 발생해 인류는 계속 위기에 빠지게 될 것이다. 기근은 멈추지만 산불이 날 수 있다.

갑작스런 폭우는 멈추지만 싱크홀은 곳곳에서 숨어서 터질 기회를 엿보고 있다. 하나의 재난이 지나가면 다른 재난이 다가올 수 있다.

재난은 거듭될 수 있다. 하나님의 창조를 경외하고 소중히 여기지 않는 이상 재난은 반복되면서 인류를 경고한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일상에 젖어 사는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을 보존하기 보다는 세상을 바꾸어서 새로운 체험을 하려고 끊임없는 노력을 하려고 한다.

목회상담은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과 그들이 속한 공동체를 돌보는 사역이다.

그러므로 목회상담은 공동체가 연결된 “생태계를 돌보는 사역”이어야 한다. 평화의 나라, 즉 하나님의 나라(사 11)를 지향하면서 재난에 처한 세상을 돌보는 사역이어야 한다. 일상에 익숙해지면 사람들은 비상사태를 준비하지 않는다.

목회상담자는 일상에서 비상을 준비하여야 한다. 비상을 준비하기 위해 목회상담자는 “민감성”과 “통찰력”을 항시 훈련하면서 준비해야한다.

코로나19 때문에 ‘사회적 거리’가 중요해졌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사회적 거리를 두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상태에 대하여 민감하여야 한다.

민감성과 통찰력은 상대방이 어떠한 상태인지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있어야 하는 사회적 거리의 적당한 유지는 존중이고 배려이다.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경우에는 상대방을 배려하지 못한다. 고통 속에 있는 사람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를 판단할 능력이 없다.

그러나 민감성과 통찰력은 상대방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도록 돕는 능력이기 때문에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는데 도움을 준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회적 거리뿐 아니라 생태계와 사회적 거리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자연생태계가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을 보장해야 한다.

민감성훈련- 민감성은 몸에서 시작된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몸에는 오감이 있다.

오감을 지니고 있는 몸으로 세상을 알아차리고 소통한다. 몸의 감각은 세상의 상태를 느끼고 소통하면서 생각과 행동의 강약을 조절하도록 도와준다. 그래서 목회상담자는 귀로 경청할 뿐 아니라 몸의 감각으로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

목회상담자는 몸을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 몸의 감각을 깨워야 한다. 낮은 곳, 땅과 접촉하려면 몸을 숙여야 한다.

목회상담자는 몸을 숙여서 땅과 접촉해야한다. 일어나지 못하는 장애인, 눈먼 사람,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의 소리를 듣기 위해 몸을 숙여야 한다.

몸을 움직여서 손으로, 발바닥으로, 그리고 몸으로 느껴보는 훈련을 해야 한다. 그러면 눈으로 볼 수 없는 사람을 찾을 수 있다. 귀로 들을 수 없는 생태계의 고통을 감지할 수 있다.

통찰력훈련- 통찰력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연관성을 알 수 있게 하고 보이지 않는 것의 엄청난 위력을 깨닫는 능력이다. 질문은 통찰력을 훈련하는 좋은 방법이다.

목회상담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자신에게 수시로 던져야 한다. “내가 지금 아는 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 “무엇을 위해 나는 강하게 소리를 높이는가?” “내가 보는 것이 전부인가?” 수시로 이 질문을 자신에게 던질 때 목회상담자는 자신과 사회를 통찰할 수 있다.

포스트 코로나를 넘어 하나님 나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듣는 목회상담은 앞으로 다가올 수 있는 재난사회에서 소외된 자를 치유하는 미래지향적인 목회상담이 될 수 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유행이 멈추면 다른 전염병이 엄습하는 재난사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일상에 익숙해져서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을 방관하거나 방치할 수 있다.

재난사회를 돌보기 위해 목회상담자는 지금부터 교회공동체와 함께 민감성과 통찰력을 훈련하여야 한다. 반복되는 재난에도 불구하고 평화의 나라,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오게 해야 한다.

자연생태계와 인류는 하나님의 창조물이다. 자연생태계와 사람이 함께 민감하게 서로를 돌아보고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더불어 사는 하나님 나라가 오기를 기대한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