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바뀐 세상을 파헤쳐 신앙의 모범을 찾아야 한다
새해 최고의 약속은 새 부대에 믿음의 열매를 담는 것이다

세상이 바뀌었다. 이미 우리는 새 시대를 살고 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시대는 바로 코로나19가 불러왔다.

인류의 역사를 살피면 늘 감염병은 우리 옆에 있었고, 주기적인 대 유행은 인명의 살상을 넘어 역사를 흔들고 세상을 바꾸었다. 21세기도 예외일 수 없다.

근대 이전의 지구적 팬데믹으로 역사가들은 세 차례 역병을 든다. 그때마다 세상은 변했고, 종교 또한 옷을 갈아입었다.

서기 541년 시작된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은 2백여 년을 이어가며 당시 로마 인구의 4분 1가량을 절명에 이르게 했다.

두 번째 역병은 악명 높은 14세기 유럽의 흑사병이다. 이 감염병은 무려 500여 년을 이어가며 유럽인을 괴롭혔다.

이 병에 희생된 사람이 수천만 명을 헤아린다. 마지막 세 번째 팬데믹은 19세기 말 등장하여 100년간 지구촌을 괴롭혔던 ‘아시아 콜레라’이다. 이 역병도 수백만 명의 인류를 죽음으로 몰아갔다.

흥미롭게도 이 세 차례의 고전 팬데믹은 종교환경의 변화도 가져왔다. 먼저 로마의 유스티아누스 역병이 돌 때 기독교인은 특유의 사랑과 희생정신으로 도시를 떠나지 않고 감염된 환자들을 지극 정성으로 돌봄으로써 ‘파라볼라노이’(위험을 무릅쓰는 이들)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결국 이들의 헌신으로 많은 로마인은 제 목숨 부지하기 위해 성전과 신자 곁을 떠났던 기존 종교를 버리고 새로운 믿음에 귀의하였다.

제사 중심의 당시 로마 종교는 이제 사랑의 실천을 전면에 내세운 윤리 종교가 대세가 되었고, 그 중심에 기독교가 서 있었다.

두 번째 팬데믹은 종교개혁을 불러일으켰다. 전통과 직제를 중시한 로마 가톨릭 신앙이 성서에 기초한 개인의 믿음과 하나님의 은총을 강조하는 개신교 신앙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즉 종교의 개인화가 강조되었고, 이제 신앙생활의 중심도 조직과 직제가 아니라 개인이 되었다.

세 번째 팬데믹인 ‘아시아 콜레라’는 19세기 말 한반도 종교 지형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당시 조선의 의학 수준은 감염병의 원인조차 알 수 없었고, 이를 치료하기 위한 의술도 변변치가 않았다.

그래서 주술이나 부적, 때론 제의 정도로 역병에 대응하고 있었는데, 당시 한반도를 찾은 의료 선교사들의 노력으로 기독교는 문명을 개선하고,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종교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선 “살기 위해선 예수 병원을 찾으라!”라는 구호가 일상이 되기도 했다.

그 결과 기독교는 한국 사회에 든든한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이렇게 팬데믹은 세상과 사람을 바꾸고, 이내 종교마저 바꾸어 버린다. 21세기도 매한가지다.

감염병이 흔들어 버린 세상의 속내를 제대로 파헤치고 살피어 새로운 신앙생활의 모범을 제시해야 함을 역사는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다.

2022년을 준비하는 우리도 더 철저히 코로나19가 바꿔버린 세상을 파헤치고 살피어 새로운 신앙생활의 모범을 찾아야 할 것이다.

교단 차원에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불러 모아 머리를 조아려 지혜를 모으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바뀐 세상을 빛으로 인도할 새로운 가이드북을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바뀐 세상을 지나간 프레임으로 어찌해볼 수는 없다.

정확히 새 세상을 파악하여 정확한 대응을 준비해야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제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교단 차원의 위원회든 TF팀이든 늦지 않게 새 시대를 담아낼 새로운 신앙의 부대를 준비하여 옹골찬 믿음의 열매로 키워내는 것이 새해 우리가 다짐할 최고의 약속 아니겠는가.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못쓰게 되리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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