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소설의 주요한 의도는 전적으로 아름다운 인간을 그리는 데에 있다. 이 세상에는 오로지 단 한 분의 완벽하게 아름다운 인물이 존재하지, 그리스도가 바로 그 사람이야.” 자신의 작품 가운데서 『백치』를 가장 사랑했다는 도스토예프스키가 백치의 집필을 끝내면서 조카딸 소피야에게 보낸 편지의 한 부분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장편 소설을 소피야 이바노브에게 바친다고 썼다.

▨… 인간의 모순, 나약함, 비열함을 가차없이 까발리는 소설(『죄와벌』)을 써서 자신의 이름을 유럽문단에 각인시킨 도스토예프스키는 ‘무조건 아름다운 인간’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그려내려 하였다. 그의 의도는 성공한 것일까, 실패한 것일까. 그는 자신의 다른 작품 『지하생활자의 수기』에서 “모든 것은 실패할 때 어리석어 보인다”고 주인공의 입을 통해 밝히기도 했었다. 그는 어리석어 보이기로 작정한 것일까, 그 반대일까?

▨… 그가 무조건 아름다운 인물로 그려내려고 등장시킨 주인공 므이쉬킨은 정신장애와 간질병 때문에 스위스의 병원에서 오랫동안 치료를 받다가 무일푼의 신세로 돌아온 공작이다. 그는 천진하고 순진무구해서 여러 사람에게 속임을 당하고 놀림을 받는다. 그러나 그의 정직성, 순박함을 확인한 사람들은 그를 백치라고 부르며 제쳐놓는 사이에 자신들의 비열함과 탐욕을 확인하게 된다.

▨… 19세기의 러시아에는 농노해방령이 선포되며 사회 전체가 혼란기를 맞았다. 도스토예프스키 자신도 사형선고를 받고 사형집행 직전에 구제를 받았다. ‘그 혼란기의 그리스도는 백치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라는 발상은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의 뺨을 후려치기에 부족함이 없다 해도 과언은 아니리라. 그 멸시와 조롱을 백치가 아니면서도 감내할 수 있느냐를 도스토예프스키는 묻고 싶었던 것 아니겠는가.

▨… 인간이 인간의 언어로(성령의 역사 없이) 그리스도를 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니,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나타내시기 전까지는 인간은 하나님을 알 수도, 만날 수도 없다. 19세기의 러시아에서 완벽하게 아름다운 그리스도가 백치여야만 했다면 오늘의 한국에서의 그리스도는 어떤 모습이어야할까. 월세 때문에 피멍들게 입술을 깨물며 간판을 내리는 교회의 뒷전에서 새해를 맞도록 이어지는 총무직 소동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므이쉬킨을 이 시대의 우리 성결인들도 찾아야 하는가? 묻고 싶다. 우리 성결인의 그리스도도 백치여야 하는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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