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노르웨이 국민 시인 올라브 하우게(1908~1994)의 시로 글을 시작하고 싶다. 하우게는 농업학교를 졸업하고 하당게르 피요르드가 보이는 전원 마을에서 평생 고향을 떠나지 않고 정원사로 일하며 시를 쓴 시인이다.

연전에 국내에 소개된 그의 시집『어린나무의 눈을 털어주다』에 실린 같은 제목의 시는 눈이 많이 오는 저녁에 긴 막대기를 들고 마당 여기저기에 서 있는 나무의 눈을 털어주는 노시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는 “어린나무들은 너무 자신만만하다. 바람 말고는 어디에고 고개 숙이는 법을 모른다”라고 쓴다. “큰 집은 춥다. 가을에 그걸 알았다. 첫 눈송이들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서리 아래 땅이 굳어가는 때”라는 구절은 읽는 이의 마음을 차갑고 맑게 만들어준다. 자신에게 적당한 집이 좋은 것이다.

하우게는 늙어서도 독학으로 외국어를 익히다 자신의 오래된 집에서 의자 위에 앉아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절제하며 사는 사람의 성정이 시에 오롯이 담겨있다.

올해는 연말 풍경이 자못 을씨년스럽다.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연일 7,000 명을 웃돌아 사람들과의 만남이 제한된 데다 인터넷을 보면 선거철을 맞아 정치권에서 쏘아대는 욕설과 증오가 가득해 마음이 무거워진다.

민주 질서의 선진국이라고 하는 미국이 지난 대통령선거 때 보여준 심한 갈등과 상대 진영을 향한 막말 행진이 한국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정책개발은 뒷전이고 상대방 네거티브에 골몰하는 이번 한국의 대선에 대해 전문가들은 최악의 부정적인 선거가 될 거로 전망하고 있다.

크리스천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서로 사랑하라”(요한복음 13:34)는 새로운 명령을 받고 살아간다.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을 사랑한다.

좋은 사람, 부담감이 없는 사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마음에 드는 사람, 괜히 뭐라고 주고 싶은 사람…. 우리 주위에 사랑하는, 또는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 많은 것은 기쁜 일이다. 많은 사람을 좋아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지복(至福)이다.

만사의 속도가 빨라져서 맘이 안 들면 인내하지 못하고 곧바로 험한 말을 쏟아내는 세상에서 사람들을 사랑한다는 것은 얼마나 품격있는 일인가.

그러나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는 아끼고 절제하며 좋아해야 할 경우가 많을 것이다. 너무 좋아한다는 감정을 드러낸 나머지 상대방이 부담스러워하거나 마음을 상하게 할 수도 있다.

미움 또한 그러할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미워하며 살아간다. 나에게 좋지 않은 일을 가져오는 사람,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 불편한 사람, 괜히 싫은 사람…. 미워하는 사람은 그가 뭘 해도 밉게 생각된다는 점에서 정신건강에 미치는 부작용이 크다.

우리가 원하는 건 서로 사랑하며 누구도 미워하지 않고 살아가는 삶일진대, 진정 우리가 누구도 미워하지 않고 살아갈 만큼 내면이 풍부하지 못하다면 미워하는 사람을 덜 미워하도록 마음을 다스려야 할 것이다.

우리가 하루를 살아가는 데 있어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부정적인 언사를 얼마나 사용하는지를 점검해 본다면 많은 이들이 자신의 내부에 실망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분명하게 미워해야 할 악이 아니라면 절제할 줄 아는 미움이 필요하다. 대선정국의 부정적 기류에 휩쓸리지 않는 담담함이 필요하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아끼고, 미운 사람을 향해서는 경직되는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힘. 한 해가 저무는 겨울 저녁에 우리가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덕목이 아니겠는가. 성경에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하박국 2:4)고 하셨다.

미덥지 못한 걸 만날 때는 다만, 믿음으로 돌아가고 싶다. 시대가 험할수록 성경 말씀이 빛나는 이유는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사랑하는 힘을 키워주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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