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맡겨진 자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습니다. 주제파악을 하고 자기 분수를 지키며 살라는 의미로서 부정적인 어감을 주어서 그런지 그리 유쾌하지 않아 보이는 속담입니다.

송충이라고 해서 꼭 솔잎만 먹어야 하는 것일까? 송충이가 먹어서는 안 될 갈잎일지라도 잘 갈아서 먹으면 괜챦지 않을까? 하는 싱거운 반문을 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 속담의 내용과는 무관하게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든지 자신이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를 깨닫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않는 자세는 거룩과 연결되어지는 크리스챤의 아름다운 덕목입니다.(롬 12:3)

우리는 흔히 ‘거룩’이라고 할 때 무언가 구체적인 종교적인 행위를 떠올리고 규정지음으로써 거룩을 정의하려는 습관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또 성경 말씀대로 사는 것을 통해 거룩하게 될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타락’이란 이와는 반대되는 행위를 하는 것으로서 심각한 도덕적·윤리적 문제로 한정하여 생각합니다. 물론 이렇게 정의내리는 것을 완전히 틀리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룩’이라는 원어 ‘카도쉬’는 훨씬 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말은 수행의 문제에 국한되지만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일을 수행하도록 하는 ‘동기’의 문제 즉 ‘마음’을 모두 포함하는데, 하나님과 온전히 한 마음을 갖는 마음의 상태와 자세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부정이나 타락은 그 상태나 자세가 깨어지고 흐트러진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테면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당연히 피조물로써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자리를 지키며 하나님이 창조하신 목적에 맞는 자세를 잘 유지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러한 마음 상태를 지키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그들은 그 위치에서 벗어나 피조물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 하는 잘못된 마음의 동기를 품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실행에 옮기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민수기에 보면 하나님은 레위인을 비롯하여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향한 뜻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품어야 할 자세에 대해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회막의 모든 기구를 맡아 지키며 이스라엘 자손의 직무를 위하여 성막에서 시무하라고 하셨습니다.(민 3:8)

이와 동시에 레위인은 아론에게 ‘온전히 맡겨진 자’(히.네투님 네투님 3:9)라고 하셨는데, 이 표현에는 ‘주다’의 명사형이 2번 반복하여 사용되었습니다.

그들은[레위인은]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주어진 자 주어진 자’ 이렇게 강조해서 표현한 것을 우리말에서는 ‘온전히 맡겨진 자’로 번역하였습니다.

레위인이 아론에게만 ‘온전히 주어진 자’라는 말은 아론을 도와 레위인은 회막의 모든 비품들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이동할 때나 머무를 때 그것을 옮기거나 설치하는 일 그리고 일반 백성들이나 외인들이 회막에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는 일을 하는 자로 세우셨던 것입니다.

당연히 이 일을 수행 할 때의 마음 자세와 태도는 기뻐하고 감사하며 그리고 충성된 모습이어야 합니다. 만일 자신들에게 맡겨진 일이 못마땅하여 불평하고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제사를 수행하는 일에 기웃거리며 자신들이 지켜야 할 경계선을 넘어선다면 ‘온전히 맡겨진 자’(히.네투님 네투님 3:9)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는 자세와 태도입니다.

흔히 신앙과 비전이라는 가면에 뒤에서 다른 이는 물론 자신까지 깜박 속아 품지 말아야 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으며 살아가는 인생이 있습니다. 사울은 자신에게 허락하지 않은 위치를 마음에 품었고 결국 하나님의 심판 속에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사라졌습니다.

반대로 모세는 하나님이 자신을 향한 마음을 찾기까지 80년이나 걸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이 무엇인지 곱씹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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