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책에 나오는 백설공주 계모가 거울에게 물어보는 질문입니다.

계모는 매일 매일 거울을 보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사람이 자신임을 인정받는 것에 살아가는 이유를 찾았던 여인입니다.

그런데 백설공주가 일곱 살이 되던 날 거울은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사람이 백설공주라고 대답합니다.

이때부터 계모의 눈에 난 백설공주의 파란만장한 고된 삶이 시작됩니다.

계모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자신이어야 했습니다. 이 세상의 중심은 자신이었습니다.

동화 속에 나오는 계모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나 중심의 삶을 살아갑니다.

나를 중심으로 가정이 있습니다. 나를 위해 친구들이 뜁니다. 나를 중심으로 직장이 움직이길 원합니다. 나를 중심으로 공동체가 존재해야 합니다. 심지어는 나를 위해 하나님이 일하셔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인류는 내가 사는 이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과 우주가 돌고 있다고 믿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내가 사는 지구를 중심으로 이 세상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이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까지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자기중심의 사고가 깨어지는 엄청난 충격이기에 우리는 이것을 코페르니쿠스 혁명(Copernicus revolution)이라고 말합니다.

나 중심의 삶이 깨어지는 것 그것은 혁명입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님을 제자들이 경험하게 됩니다.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교회가 시작되고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져 있는 디아스포라 유대인에게 그리고 헬라인과 로마인 이방인들에게까지 성령님께서 역사하시고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이러한 현실을 바라보며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이방인들도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말을 전하게 되고 이로 인하여 예루살렘 공회의가 열리게 됩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그리스도인이었지만 유대인 중심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이방인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중심으로 모세의 율법을 강요하고 자신들처럼 살라고 복음을 왜곡시켰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야고보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인정했습니다.

더는 유대인 중심, 나 중심의 삶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중심이 되어 다른 사람을 볼 수 있는 영적 시야와 영적인 공간이 열렸습니다.

나 중심의 삶을 살면 다른 사람을 볼 수 없습니다. 아무리 크고 귀한 것이라도 내가 관심을 두지 않으면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내 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나 중심의 삶을 내려놓는 일은 혁명이라고 할 만큼 어렵습니다. 이 혁명은 나 스스로 할 수 없습니다. 성령님께서 내 마음에 주인이 되실 때 내적 혁명인 영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아내가 화분 하나를 사다 방 안에 들여놓았습니다. 가느다란 줄기에 넓은 이파리 몇 장이 붙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줄기 맨 꼭대기 위에 작은 싹이 돋아나기 시작했습니다.

하찮은 것이지만 가까이 보니 그 안에 새로운 싹이 돋아나는 모습이 아름다웠습니다. 새로운 싹이 또 나올까 기다려졌습니다. 들여다보고 관찰하니 그 속에 하나님의 생명이 자라나는 우주가 있었습니다.

매일 거울 속의 나만 바라보고 사는 내 중심의 삶을 살 때는 보이지 않던 작은 것들이 주변을 보기 시작하자 보였습니다. 나 중심의 삶을 내려놓는 혁명적인 삶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실 때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나의 시야를 주변인으로 돌리십니다. 성령님께서 내가 보지 못하던 삶을 보게 하십니다.

매일 나 중심의 삶을 사는 눈을 돌려 보지 못했던 사람들을 보십시오. 내 눈에 보이지 않던 사람을 내 삶의 공간에 초대하십시오. 그분들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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