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초부터 정부의 위드 코로나 1단계 정책 발효로 제한되었던 기독교 예배가 다시 회복되고 있다.

물론 온전한 회복은 아니지만 현재 예배당 좌석 정원의 50% 한도 내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고 백신 접종을 완료한 사람은 찬양대나 소그룹 모임에도 참여할 수 있다.

그동안 교회에 나오지 못했던 성도들이 교회에 출석함으로 비대면 예배에서 대면 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성도의 교제도 서로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코로나 19로 인해 2년 가까이 비대면 예배를 드렸던 교회들에는 너무나도 큰 후유증이 남게 되었다.

재정 규모가 작은 교회들은 온라인 예배도 드리지 못하여 문을 닫기도 했다. 주일성수는 한국교회의 가장 큰 자랑거리 중 하나였는데 이 자랑스러운 전통이 무너져버렸다.

성도들은 교회가 아닌 가정에서 현장 예배가 아닌 비대면 예배 방식이 기독교 예배의 대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다.

성도들은 이 온라인 예배가 처음에는 너무나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인해 거부감도 들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익숙해져 갔다.

또한 성도 중에서는 각 가정에서 예배를 드림으로 시간이 절약되고 교회 봉사나 모임으로부터 자유로움을 느끼며 비대면 온라인 방식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런 성도들은 예배가 정상화되어도 다시 교회로 돌아오고 싶지 않다고 말하기도 한다. 현 상황에서 우리는 예배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제는 예배가 다시 회복되었으니 정상적인 예배로 돌아와야 한다고 주장을 한다면, 온라인 예배는 정상적인 예배가 아니었냐고 반문할 것이다.

온라인 예배는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렇다고 온라인 예배가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온라인 예배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예배자들과 함께하셨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의 속성은 어디에서 드리는 예배이든지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를 받으시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여기서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 즉 이 땅에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빌립보서 2장 6절은 예수께서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 시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취하지 않으시고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다고 증언한다. 예수께서 직접 육신을 입으신 사건이 우리가 다시 예배를 위해 모여야 하는 이유이다.

역사적으로 교회 공동체의 예배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실재적 모임이라는 방법을 통해 드려져 왔다.

모임은 예배의 시작이고 말씀을 듣고 성찬을 나눈 후 각자의 처소로 파송됨은 예배의 마지막이다.

또한 기독교 예배는 하나님과 예배자의 만남의 사건뿐 아니라 예배자와 예배자의 만남, 즉 예배를 드리는 공동체와 하나님과 만남의 사건이다.

예배는 혼자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예배 공동체, 즉 교회의 회중이 드리는 것이다. 그렇기에 기독교 예배를 공 예배라고 부른다. 즉, ‘내’가 아닌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모임의 예배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동안 성도들이 온라인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어려움 속에서도 유지하기 위해 예배를 드렸다면, 이제는 모임의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이것은 거룩한 성도의 교통을 이루는 것이며 반드시 다시 회복돼야 한다.

지금 예배의 형식은 다시 회복되어가고 있다. 이제 다시 성도들이 교회로 모여 온전한 우리의 예배를 회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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