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작품의 영역에서는 대문호라는 평가가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도스토옙스키가 악랄한 조건의 출판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선불로 인세를 조금 받지만 마감날까지 작품을 완성하지 못하면 원고료를 포기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이후로 9년간 자신의 모든 작품에 대한 출판 권리를 넘긴다는 내용이었다. 늘 돈에 쪼들렸기 때문이겠지만 원고를 쓴다는 일을 경험해본 사람들의 처지에서는 패가망신할 계약을 한 셈이었다.

▨… 실제로 도스토옙스키는 발등에 불이 떨어질 때까지 원고 쓰기를 미루고 미루었다. 마감날이 다가오자 다급해진 도스토옙스키는 속기사 안나 그리고리예브나 스니트키나를 채용하여 구술하고 그녀가 밤에 원고를 정리하면 다음 날 다시 구술하는 방법으로 마감날에 맞추어 작품을 간신히 완성했다. 이 작품이 바로 「도박꾼」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이 도박습성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가 생애 최대의 도박에서 대박을 터뜨렸다고 비아냥댔다.

▨… 인간의 비열함, 악랄함, 천박함을 가차 없이 폭로하는 작품을 쓴 도스토옙스키가 ‘무엇’ 때문에 「도박꾼」에 올인하는 모습으로 계약서를 만들었을까. 그것은 도박으로 자신을 묶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막다른 골목에 쫓겼던 그가 질 수밖에 없는 도박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속기사 안나의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판단한다. 아니, 도박꾼 도스토옙스키가 대박을 터뜨린 도박은 안나를 아내로 맞이한 일이었다고들 말한다.

▨… “많이 힘드시지요? 요즘 같은 때에 개척교회 목사님을 보필하시려면…” 은퇴한 지 10년이 넘은 노(老) 목사는 이미 쉰이 넘은 나이에도 개척교회를 붙들고 씨름하는 목사와 그 사모의 내방이 고맙기도 하지만 안타깝기도 해 목소리가 목구멍 안에서만 맴돌았다. “힘들지는 않습니다. 요즘엔 오는 사람도 없는데요 뭐…” 말끝을 맺지 못하는 사모의 목소리엔 눈물이 담겨있었다.

▨… 스물하나에 도스토옙스키를 남편으로 맞은 안나는 서른다섯에 그의 눈을 감겨주었다. 그 후에도 도스토옙스키뿐인 삶을 살았다. 이 땅의 작은 교회 목회자들도 도스토옙스키처럼 대박을 터뜨릴 수 있을까. 목회는 도박이 아니니 대박은 원초적으로 불가능하다. 아니, 애초부터 그 불가능을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 믿음으로 이 땅의 사모님들은 개척교회라는 십자가를 목회자 남편과 함께 붙들었다. 어쩌면 영원히 완성할 수 없는 작품을 완성하기로 계약하듯이… 이 점에서 개척교회 사모님들은 모두 도스토옙스키의 안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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