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똑똑한 어떤 사람이 성 아우구스티누스에게 물었다. “하나님은 영원전부터 계셨고,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는 무엇을 하고 계셨습니까?” 얼굴에 미소를 띄운 아우구스티누스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질문을 일삼는 사람들이 들어갈 지옥을 만들고 계셨습니다.” 칼뱅도 같은 질문을 받고서는 아우구스티누스와 같은 대답을 했다고 한다.

▨… 똑똑한 사람의 어중된 질문과는 다른 질문을 파스칼은 던진다. “하나의 종교가 인간의 본질에 대한 참된 지식에까지 도달하지 못할 때, 참된 종교가 될 수는 없다. 종교는 인간이 지니는 위대성과 왜소성의 지식에 도달해야 한다. 기독교를 제외하고 그 어떤 종교가 이 지식에 도달하였다고 볼 수 있을까”(파스칼, 『팡세』) 파스칼이 말한 위대성과 왜소성이라는 인간의 특성이 오늘처럼 극명하게 대비되어 드러난 시대가 또 있었을까.

▨… 코로나19가 전국을 강타한 이후 한국교회의 교세는 급격하게 줄고 있다고 한다.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지만 문을 닫는 교회보다는 개척교회의 수가 한결 많았던 전통이 무너지고 있다.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랐던 발디즈나 이땅의 문준경의 신앙으로 증명된 인간의 위대성 보다는 코로나19의 팬데믹으로 숨이 막혀버리는 왜소성이 인간의 특성임을 뉘라서 부정할 수 있는가.

▨… 신앙인의 믿음이 인간의 위대성을 드러낼 때면 역사의 물줄기도 바뀐다. 주님의 사도들이, 종교개혁자들이, 마틴 루터 킹이 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신앙인의 믿음이 역으로 그 왜소함을 드러내면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교회를 향해서라도 발길질을 해대기도 한다. 루터와 토마스 뮌처의 대립이 얼마나 많은 신앙인의 생명을 희생하게 했는가. 그 희생이 순교였다면 교회사의 물줄기는 다른 방향이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 제53회 전국장로회 수양회가 열린다. 우리 성결교회의 평신도 대표 모두가 모이는 대회이다. 목사들이 성결교회라는 사륜구동차의 왼쪽바퀴라면 장로들은 오른쪽바퀴 아니겠는가. 이 오른쪽바퀴들의 관심이 하나님은 창세전에 무엇을 하셨나 따위에 묶인다면 한국성결교회는 왜소성에 갇힐 수 밖에 없다. 장로수양회가 미스바 대회이기를 바라는 왼쪽바퀴들의 기대를 장로님들은 유념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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