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는 육체적·경제적·물리적·가시적 요소뿐 아니라 정신적·심리적·영적·비가시적 요소도 매우 중요하다.

아무리 신체가 건강하고 경제적으로 풍요롭다 해도, 그 영과 정신이 병들어 있다면 결코 행복하고 평안한 삶을 살 수 없다.

코로나19 방역도 마찬가지다. 전염병을 예방하는 것은 물론 매우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오로지 그 하나에만 몰두하여 다른 요소들을 경시하고 외면한다면, 결국 사람들은 내면이 병들고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다.

이전까지도 너무나 많은 분노와 중압감,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한국인들은, 코로나19로 더욱 심각한 처지에 놓여 있다.

오래 계속된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한 경제적 피해 역시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큰 걱정과 아픔을 줬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것을 발전적으로 승화시키지 못하고, 부정적·공격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이는 그 개인과 주변인들에게만 피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 각종 범죄와 범사회적인 문제로까지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그 같은 분노와 스트레스가 범법행위로까지 이어지는 것은 매우 극단적이고 드문 예이지만, 그 범위를 넓혀 본다면 이는 일부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임을 알 수 있다.

가정에서, 인터넷 공간에서, 직장생활에서, 우리는 얼마나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공격적인 언어와 행동을 보일 때가 많은가.

사람들이 스트레스 받는 일을 아예 없애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심지어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줄이는 일조차 매우 어렵다.

그렇다면 점점 더 늘어나고 극악해지는, 스트레스로 인한 ‘묻지마 범죄’ 등 각종 사회적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겠는가.

종교의 역할이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특히 기독교는 이 땅에 전래된 이래, 백성들의 영혼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한편 사회 각 영역의 발전과 성숙을 위해서도 많은 기여를 해 왔다.

그 공로와 업적을 일일이 다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국민의 내면이 병들고 있다.

이제 ‘위드 코로나 시대’로 첫발을 내디딘 지금, 국가 지도자들이 심리적·영적 방역의 중요성을 깨닫고, 보다 폭넓고 균형잡힌 안목으로 정책을 만들고 시행하길 바란다.

특히 교회는 국민과 교인들이 스트레스를 건전히 해소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피할 수 없다면 맞서서, 극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각종 문화와 상담 및 친교 프로그램 등을 통해 그 내면에 알게 모르게 쌓여 있는 스트레스들을 치유해야 한다.

또한 자기 절제와 통제 능력을 키워야 한다. 현대인들은 정신적으로 너무나도 나약해져 있어서, 작은 스트레스조차 견디지 못하는 경향을 보이는 이들이 많다. 특히 ‘묻지마 범죄’를 일으키는 당사자들은 더욱 그러하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라는 성령의 열매들을 맺는다면, 이러한 나약함을 능히 이길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상처 입은 치유자’인 목회자와 사모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목회자와 사모들은 한국사회의 유교적이고 권위적인 분위기 속에서 좀처럼 자신들의 약함을 드러내 치유의 기회를 갖기가 매우 어렵다.

이들에 대해서도 교계가 관심을 갖고 지원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교회가 싸매고 치유하자. 상처입고 신음하는 이 시대를 사랑으로 감싸안자. 그리하여 오랜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지친 많은 국민에게, 기댈 수 있는 안식처가 되어 주자.

또한 하나님께서 속히 이 땅을 치유하시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그리할 때 세상은 다시 교회에만, 복음에만 희망이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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