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부터 코로나바이러스 방역조치가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 시스템으로 전환돼 모임 제한이 크게 완화됐다.

종교 시설도 미접종자를 포함하는 종교활동을 50%까지 가능하도록 했고, 접종 완료자 등으로만 구성하는 경우는 1차 개편에서 인원 제한을 해제했다.

아직도 신규 코로나 확진자는 7일 평균 1,500명을 상회하고 있지만 위드 코로나로의 전환으로 국민들의 일상이 새로운 차원을 맞는 것이다.

기존의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체계는 사람을 만날 때 흔쾌히 반기기보다는 거리두기를 함으로써 은근한 ‘배제’의 성격을 지니는 것이었다.

그러나 위드 코로나 시대의 질서는 코로나19를 예방해나가는 것을 전제로, 이러한 제한을 제거함으로써 일상생활을 하면서 타인과의 ‘화합’을 추구하는 성격을 지니는 것이다.

팬데믹으로 인해 기피되었던 사람들 간의 호의적인 만남이 다시 회복된다는 점에서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이 시점에서 코로나바이러스 초기였던 2020년 1월 말 충북 진천과 충남 아산의 주민들이 보여줬던 선한 마음씨를 먼저 얘기하고 싶다.

당시 정부가 전세기로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 거주하는 교민과 유학생 등 700여 명을 데려오기로 하면서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소독과 방역을 철저히 하면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설명했지만, 이들을 격리 수용하는 시설이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반발이 가라앉지 않았다.

주변 주민들이 경찰인재개발원 진입로를 농기계로 막았고, 교민 진입 과정에 큰 충돌이 예상됐다. 주민들만이 아니라 해당 시의회까지도 가세했다. 지역 이기주의는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병폐다.

이런 와중에 ‘배방맘’이라는 아산의 한 주부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We are Asan! 고통과 절망 속에서 많이 힘드셨죠. 아산에서 편안히 쉬었다 가십시오”라고 적은 스케치북을 든 사진을 올렸다.

이 주부의 글은 게재한 지 10여 시간 만에 1만 1,000여 개의 댓글과 1만 4,000여 개의 공유, 4만 9,000여 명의 ‘좋아요’로 페이스북을 뜨겁게 달궜다. 이 글 하나가 전국의 민심을 바꿨다.

“We Are Asan!” “생거진천!” 아산과 진천 주민들의 선의가 반대하는 사람들의 분노와 갈등을 달랬다.

길목에 설치했던 ‘수용 반대’ 현수막이 내려졌고, 교민들을 태운 경찰 버스는 환영 팻말을 들고 있는 주민들 사이를 달려 격리 수용시설로 들어갔다.

이렇게 해서 코로나 감염 초기의 환자 격리 수용 운동이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정치인과 언론이 해당 지역의 갈등과 분노를 확산시킬 때 깨어있는 시민들은 그에 휩쓸리지 않았다.

대통령 선거를 5개월여 앞두고 사회의 갈등이 확산하고 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는 지역, 계층, 세대,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진영 간의 전쟁이 벌어지는 중이다.

욕설이 난무하고, 상대를 향한 증오와 근거 없는 악성 추문들이 꼬리를 문다. 큰 선거가 있을 때마다 겪는 것이지만 정치적 진영을 둘러싼 사회의 내홍은 과거보다 별로 나아진 것이 없다. 혹시 크리스천들이 이런 정치적 갈등에 빠져드는 것은 아닌가.

위드 코로나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우리가 지난 2년간 코로나로 커다란 고통을 겪으면서 달라진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지금 회복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자. 사람들이 기본과 양식으로 돌아갈 때만이 세상이 함께 사는 아름다운 곳으로 변한다.

올바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하고, 지킬 수 있는 힘, (내 편이 아닌) 나그네를 선대한 아브라함처럼 사람들을 기쁨으로 섬기는 마음, 바로 그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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