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은 10월의 두 번째 월요일을 콜럼버스 데이로 명명하고 국가기념일로 지키고 있다. 1492년 10월 12일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상륙한 것을 축하하는 성대한 퍼레이드를 벌인다. 그러나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콜럼버스의 신세계 당도가 자신들에게 커다란 불상사였으며 콜럼버스는 살인자였다고 주장한다.”(마거릿 맥밀런, 「역사 사용설명서」)

▨… 콜럼버스의 카리브 제도 도착 500주년(1992년)에 미국 개신교 전국교회협의회는 속죄를 위한 회개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은 백인의 침략, 원주민 학살, 노예 제도, 환경 파괴와 토지 침탈의 원인을 제공했으며 이것들이 콜럼버스의 진정한 유산이라고 말하며 속죄를 구하려고 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도착이 필연이었더라도 그 후의 역사는 달랐어야 한다는 자책이었다.

▨… 1523년 M.루터를 ‘존경하는 아버지’라고 부르며, 자신의 종교개혁을 오해하지 않기를 호소했던 토마스 뮌처(Tomas Münzer)는 1524년 루터를 공격하는 팜플렛을 간행했다. 여기서 루터는 거짓말 박사, 기회주의자 신부, 세상과 제후들의 아첨꾼, 탐욕스런 서기관들 중의 한 사람으로 지칭되었다. 분노한 루터는 농민전쟁을 선두에서 이끄는 뮌처를 진압하기 위해 귀족들에게 검을 들 것을 권면했고 포로로 잡힌 뮌처는 심한 고문 끝에 36세의 나이로 참수당했다.(참조, 정승훈 「종교개혁과 21세기」)

▨…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 한다. 그렇더라도 아메리카는 콜럼버스가 없었다면 원주민의 땅으로 지금까지 온전히 보존될 수 있었을까, 또 만약에 뮌처의 종교개혁이 루터를 압도할 수 있었더라면 오늘의 교회 모습은 그래도 차이가 없는 이대로의 모습일까 라는 문제는 상상이라고 하더라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일까? 지금의 한국교회 모습이 궁극적인 교회의 모습일 수 있는가를 묻고 싶어 던지는 질문이다.

▨… 종교개혁 500주년이라고 한국교회 전체가 북치고 장구치던 때가 언제였던가. 우리 성결교회가 공들였던 95개조는 어느 창고에서 잠자고 있는지 아는 사람 있을까. 가톨릭 교회를 대상으로 삼은 루터와 뮌처의 종교개혁이 필연이라면, 또 뮌처에 대한 루터의 승리가 필연이라면 그리고 그 필연을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로 번안할 수 있다면 오늘의 한국교회를 대상으로 한 종교개혁도 긍정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콜럼버스 데이에서 박수나 치는 객쩍은 자리에 연연하다가는 궁극적인 교회다움의 회복은 부지하세월일 수 밖에 없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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