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나아가게 하라

      이성훈 목사
    (임마누엘교회)

유학시절 이스라엘에서 버스를 탈 때마다 흔히 듣는 말이 있었습니다. 손짓을 하며 “싸! 싸!”하는 말입니다. 빨리 ‘타라’는 말인데 기사님의 마음이 느껴져서 그런지 사람들이 그래도 얼른얼른 타고 내리고 하는 풍경이 그리 낯설지만은 않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이렇게 현대 히브리어 생각이 문득문득 날 때가 있습니다.

조금 전에 히브리 운전기사가 “싸! 싸!”라고 했던 말도 성경에서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홍해를 앞에 두고 (출 14:15) 『...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앞으로 나아가게 하라’는 말이 바로 히브리어로 ‘베이사우’라고 하는데 조금 전에 ‘타라’라고 하였던 “싸!”와 어근이 동일합니다. 같은 말입니다. 즉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얼른 가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을 앞뒤 문맥을 고려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라’로 번역을 했습니다만, 히브리어 동사의 형태를 볼 때 그렇게 번역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면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주목하고 싶은 점이 있는데 그것은 이 용어에서 느낄 수 있는 생동감입니다. 조금 전에 언급하였듯이 이스라엘 생활 속에서 그 언어를 경험하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생동감과 동적인 느낌은 히브리어 동사가 가지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입니다. 히브리어 동사는 행동을 묘사하는 용어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들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라’고 하였을 때 이 말은 그들로 하여금 더 이상 장막에 머무르거나 지체하지 말고 움직이라고 하는 동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히브리어 동사들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동적 특징은 언제나 ‘동적인 움직임’을 표현합니다.

이를테면 ‘앉아 있다’와 같은 정지 상태를 표현하는 용어조차도 그 안에는 ‘앉아 있는 움직임’도 표시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앉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앉아 있는 정적인 상태’를 표현함과 동시에 ‘그가 계속해서 앉아 있는 행동’을 하고 있음을 내포합니다.

즉 그가 계속해서 앉아 있는 행동을 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따라서 히브리 동사의 특징은 ‘말하는 것’과 그 ‘말하는 내용의 간격’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그 말의 주체가 하나님이라면 그 말은 더 말할 나위 없이 확고합니다. 말은 결코 정적으로 머물러 있지 않고 행동을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 사유에서 소위 ‘빈말’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비록 정적으로 표현되었을지라도 그 말은 ‘정지로 넘어간 동작’을 의미합니다.

이는 히브리 사고(思考)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입니다. 히브리인들이 믿음이란 행동할 때 생겨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구약 성경을 읽을 때 이러한 히브리적 사유의 특징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항상 유념해야 합니다.

삶 가운데 도저히 이해되지 않고,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을 때 보이지 않는 것을 믿고 가는 일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럴 때마다 구약에 나타난 히브리적 사유가 우리의 믿음을 견고히 붙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마도 그들이 뒤에는 애굽 군대가, 앞에는 홍해가 그들을 가로막고 있을 때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출 14:16)는 말씀이 들려진 이상 그들은 이미 앞으로 나아가는(히. 나사아) 행동으로 이어졌을 것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분명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신실하심을 믿고 있기에 그 말씀의 주체가 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행동하는 것입니다. (고후 5: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순종하고자 하나 상황의 여의치 않을 때 그 말씀의 주체가 되시는 하나님을 믿고 히브리적인 사유와 사고가 우리를 지배하여 행동으로 옮겨졌으면 좋겠습니다. (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 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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