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6년 리옹의 부유한 상인 발데스(Valdez) 또는 발도(Waldo)는 방랑하는 가수가 성 알렉시스의 희생을 읊어주는 노래에 감동되어 한 신학선생에게 “하나님을 찾는 최선의 길”을 물었다. 그 선생은 수도원의 황금률을 인용했다. “네가 온전한 사람이 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있는 것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라. 그리하면 보화를 하늘에 쌓을 것이요. 또 와서 나를 따르라”(윌리스턴 워커, 「세계기독교회사」)

▨… 발데스는 그리스도가 제자들에게 하신 명령을 그대로 따르기로 결심하고 아내와 딸들의 생계를 위한 재산 외에는 모두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었다. 아울러 성서를 프랑스어로 번역하도록 의뢰하였다. 그의 행동은 리옹의 사람들을 감동시켰고 그에게 ‘사도적 청빈’이 있음을 확인한 사람들은 그를 따라 ‘마음이 가난한 자’가 될 것을 다짐하였다. 그러나 발데스는 평신도였기에 교황의 성직자들은 그의 설교와 복음전파 행위를 일체 금지시켰다.

▨… 발데스와 그를 따르는 ‘발도파 사람들’은 교황 알렉산더 3세의 주관으로 열린 1179년의 제3차 라테란교회회의에 설교 허가를 호소했다. 그러나 교황은 이를 거절하고 1184년 교황 루키우스 3세는 발데스와 발도파 사람들을 파문했다. 이때로부터 발도파 사람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엄혹한 탄압에 쫓겨 알프스 산속으로 숨어들어야 했다. 그러나 교황의 군대는 끈질기게 발도파를 추격해 산속 어느 동굴에서는 3,000명이 넘는 발도파가 몰살당하는 참사도 빚어졌다.(참조 :조재석, 「발로 쓴 프랑스, 칼뱅 개혁주의 종교개혁」)

▨… 교황에 대한 발도파의 저항이 종교개혁의 단초를 제공한 것이냐 아니냐의 문제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리옹의 가난한 사람들’의 신앙회복운동이 평신도 주도로 이뤄졌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는 영웅적으로 핍박을 견디어낸 가장 존경할 만한 역사 이야기”이다.(워커, 「세계기독교회사」)

▨… 코로나19로 모든 교회활동이 움추러드는 이때, 남전도회전국연합회 제21회 전국대회와 제52회 전국장로회 수양회가 잇달아 열릴 것이라고 한다. 굳이 발도파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교회개혁의 힘의 원천은 평신도에게 있음을 뉘라서 부정할 수 있는가. 교회를 교회되게 하려고 800여 년 동안 그 누구보다 탄압과 박해, 순교를 경험한 발도파 교회를 배우려는 의지가 우리 성결인 평신도들에게도 타오르기를 기대하며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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