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국 목사
 (구미중앙교회 원로)

불볕더위가 심하던 지난 여름, 삶은 감자와 달걀 스크램블, 애호박전을 아침 식사 대신 먹기로 했다.

아침마다 ‘인큐 비닐’ 애호박 한 개씩 전을 부쳤다. 대부분 마트는 ‘모양 성형’을 하고 출하된, 공장에서 찍어낸 제품처럼 미끈하게 생긴 ‘인큐’ 호박만을 취급했다.

애호박을 얄팍얄팍하게 썰어 소금물에 잠시 담갔다가 건져 밀가루옷을 입히고 풀어둔 달걀을 묻혀 기름을 두른 팬에 익혀내는 게 내가 호박전을 부치는 방법이다.

감자와 스크램블을 제쳐놓고 아내의 젓가락이 전으로만 가는 걸 보면, 솜씨를 인정받는 것 같아 흐뭇하다가도 부쳐 놓은 전을 보면 만족스럽지 않아 불편하다.

애호박전을 접시에 담을 때는 망설이기도 하고 꼴이 아주 사나운 것은 내 입에 우겨넣기도 한다.

깔끔하고 얌전한 애호박전 부치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다. 애호박은 살갗이 여려서 온도가 조금만 높아도 벌겋게 화상을 입어 볼품이 없다.

음식은 먼저 눈으로 먹고 나서 입으로 먹는다 하지 않던가. 시각은 가장 먼저 식욕을 돋워주는 지렛대다.

예열을 하고 기름을 두르고 이내 온도를 낮춰 은근한 화력으로 여유롭게 천천히 부치면 살갗이 뽀얀 어린아이 얼굴 빛깔의 애호박전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아는 지식이 성공을 보장 할 수 없는 것처럼 내 호박전은 아직도 실수가 많다.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조심하고 또 조심해도 눈 깜짝 하는 사이 벌겋게 화상을 입혀 놓는다.

서두르는 성격에다가 달궈진 팬의 온도조절 미숙이 원인이다. 어느 날 가끔 다니던 채소가게에서 허리가 약간 구부정하고 아래와 위의 굵기가 차이 나는 애호박을 발견했다.

자유분방하게 자랐음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잘 생기진 못했어도 맛있고 값싸고 건강한 호박입니다.”

주인의 설명을 듣고 두 개를 사 온 게 계기가 되어 그 후로는 그 호박을 샀다. 좁은 비닐 포장 틀 속에서 억압 받으며 자란 ‘인큐호박’ 보다는 비바람과 밤과 낮의 일교차를 알몸으로 견디며 온갖 환경의 어려움을 극복했을, 자유롭게 큰 호박이 건강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애호박전에 화상을 입히는 실패의 경험들이 지금까지의 내 삶을 돌아보게 한다. 그중에도 아들딸을 키우며 실수했던 것들이 떠오른다.

‘자식 사랑’이라는 어설픈 명분으로 가슴속에 불같은 열정을 담고 온도 조절을 할 줄 모르던 서투른 아버지였다. 가끔씩, 수틀리면 ‘이놈이 커서 인간 구실 할까’ 싶어 면박하고 다그치고 매질을 서슴지 않았다.

그럴 때는 내가 그 아이의 주인이고 아이 운명이 내 손에 달린 것처럼 조급증이 발동했다. 이런 무모한 불길에 아이는 소리 없이 화상을 입고 있어도 그걸 몰랐다. 며칠 전 딸과 외식을 했다.

그 자리에서 그의 어릴 때 이야기가 나왔다. “00아, 넌 아빠에게 혼난 일 별로 없었지?” 불쑥 물어봤다. “아닌데요, 캐나다에서 상담심리 공부를 시작하면서 어릴 때 입은 상처 치유하느라 얼마나 고생했게요.” 온순하고 고분고분했던 그에겐 상처를 입힌 게 없다 싶었는데 뜻밖의 대답에 놀랐다.

그러니 많이 두들겨 맞고 자란 말썽꾸러기 아들 녀석은 지금도 아물지 않은 상처가 얼마나 많이 남았을까.

젊었을 때 애호박전을 부쳤더라면 좋았을 걸, 달궈진 팬에 호박전 화상을 입히면서, ‘인큐 호박’보다는 자연 그대로 자란 애호박을 선호 하면서, 내 아들딸을 어떻게 키워야 하겠다는 지혜를 얻었을 텐데, 아쉽다.

그리고 내 아들딸의 ‘사람됨’은 나만의 힘으로 가 아닌 세상과 세월과 하나님의 도우심이라는 걸 알았더라면 마음고생을 덜했을 것을, 때 늦게 후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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