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사회는 탈북자들이 남한사회에 잘 정착하도록 돕고 있다. 특히 탈북 과정에 직접 개입한 선교사들과 기독교인들의 활동은 TV-다큐로 방송될 정도로 그 역량이 커졌다.

그 결과 많은 탈북자들이 남한교회로 오게 되었고, 이들을 섬겨야 한다는 탈북자선교가 1995년 이후부터 일어났다.

대략 25년을 넘어선 탈북자선교는 이제 전환의 위치에 와 있다. 그동안 탈북자선교의 형태와 유형은 생활자금 지원과 취업현장 그리고 남한사회 정착이 목표였다.

그 결과 탈북자선교는 어느 정도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상당한 보완작업을 필요하게 되었다.

25% 이상의 탈북자 자살률, 월북하는 탈북자, 부적응 탈북자들의 아픔과 고통이 사회 저변에 소리 없이 보도되기도 했다.  

탈북자가 2021년 3만 6천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반면에 한 60대 여성이 파주를 통해 월북하려다 검거된 일이 최근에 있었다.

확인이 불가능한 탈북자가 약 998명 정도라고 한다. 특히 자진 월북자가 100여 명 정도라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탈북자들은 가장 큰 고통이 남한사회로부터 차별을 말했다.

취업현장에서 겪는 체제 부적응과 동료와의 소통부재는 자신의 정체성마저 위기로 몰고 갔다는 것이다.

더구나 나이가 들어 탈북자들이 남한 체제에 적응하며 산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탈북자 가정의 자녀들과 청소년들은 어른 세대보다 남한 정착이 비교적 수월했을 것으로 보지만, 이 역시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탈북자선교의 정의와 기본 개념의 정립이 필요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탈북자선교는 물질적 지원과 그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방식으로 주로 이루어져 왔다.

가전제품이나 집 구하기, 남한 사람들과의 갈등, 뜻밖의 사건과 시비 거리에 담당 경찰관과 지역교회가 협력해 왔다.

그동안 탈북자 선교는 1차 물질적인 지원에 집중해왔다. 지금은 2차 영적인 사역으로 전화해야하는 시기다.

문제는 탈북자들의 정신적 고통이다. 말하지 못 하는 가족의 문제, 탈북에 관한 심리적 이해 등이다.

그런데도 교회는 탈북자들을 예배 참석을 독려하는 교회구성원의 한 사람으로만 보았다.

사실 탈북자선교는 영적인 사역을 위해 출발했으나, 지금도 대부분이 물질적 사역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섬김과 헌신보다는 단순한 탈북자 선교비 지원이 훨씬 간편하기 때문이다.

사실 탈북자를 선교하는 사람들도 살아가기 바쁜 사람들이다. 탈북자 선교를 지원하는 자들 중에 심지어 자기 코가 석자인 사람들도 많다.

결과적으로 탈북자 선교를 형식적인 지원으로 혹은 전도자의 일반적 사명정도 인식하기도 했다.

탈북자선교 30년을 바라보며, 이제는 탈북자의 전인적 구원사역에 집중해야 한다.

탈북자선교의 많은 부문을 다 하려고 하지 말고, 할 수 있는 일을 정해놓고 삶을 통한 선교의 모습을 탈북자와 함께 ‘삶의 선교’를 만들어가야 한다.

이것을 아브라함 카이퍼는 ‘영역선교’라고 정의했다. 예수 전도단에서도 하는 선교사역이다.  

이제는 어느 정도 남한 사회에 적응하며 사는 탈북자들도 탈북자선교에 동역해야한다. 그들을 징검다리삼고 탈북자들을 섬겨야 한다.

탈북자선교는 이들과 협력하여 탈북자들의 영적인 일을 어떻게 케어해 주고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를 고심해야 한다. 동시에 탈북자들에게 남한 사람들도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 것을 알려주어야 하고, 남한 사회가 여기까지 오는 과정도 설명해 주어야 한다.

지금 겪는 자신들의 어려움을 남한 사람들도 겪어 왔음을 일깨워 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탈북자선교를 하는 사역자들의 영적인 삶의 재정립과 사역자들이 삶의 영역에서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있는가를 점검해야 한다.

앞으로 탈북자 선교의 핵심적 유형으로 영적선교인 삶을 통한 영역선교로 자리 잡아야 한다. 교회는 탈북자를 새신자로 여겨 환영하고 맞아들이고 나서 나 몰라라 팽개쳐 버린다는 그들의 간증을 새겨들어야 한다.

탈북자선교는 너도나도 다 할 것 같은 선교가 아니다. 세계선교는 보내고 후원하면 일단 정리가 되지만, 탈북자선교는 지금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현실에서 지속적으로 증거 되고, 보여주고 나아가 삶의 확증으로 보여 주어야하는 선교이기 때문이다. 그것만이 탈북자들을 예수께 돌아오게 하는 선교가 될 것이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