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큰 인물이었기 때문일까, 모르기는 해도 조용기 목사 만큼 찬탄과 비난을 동시에 받은 목사를 한국교회사에서 다시 찾기는 당분간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한국교회총연합의 성명서’가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 분은) 세계 최대 교회를 이룬 능력의 목회자였다. 혼돈과 격변의 20세기 후반기에 복음으로 시대를 이끈 위대한 설교자이자 뛰어난 영성가로서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의 부흥을 이끌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확산에 지대한 공헌을 남기셨다.”

▨… 하기는 1958년의 서울 변두리에 세운 천막교회가 1992년 교인 수 70만명을 넘어서자 기네스북이 세계최대교회로 그 이름을 등재했다. 이같은 기록도 그가 비범한 인물이라는 평가에서 결단코 절하되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 아니겠는가. 천막교회를 시작한 불과 스물 두 살의 젊은이가 30여년 만에 세계최대교회를 일구어냈다는 스토리는 차라리 신화에 가깝다고 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 그러나 그를 향한 비판이나 비아냥이 그에게 주어지는 찬탄 못지 않게 날이 서 있고 다양하다는 사실도 결코 간과되어서는 안된다. 국민일보 창간을 비롯한 그가 벌인 여러 가지 사업의 규모가 큰 탓도 있었겠지만 돈의 행방을 문제삼는 시비가 끊이지 않았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가족들이 그 사업의 중심역을 맡았다는 사실은 그 어떤 변명도 용납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하지 않았는가.

▨… 그런 목회 외적인 이유 보다 목회의 신학적 본질을 묻는 신앙인들은 그의 목회가 성경의 구원을 ‘삼박자 축복’으로 변절시켰다고 날을 세워 비판한다.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한3서 2절)”의 말씀이 모든 교회의 등록 상표처럼 된다면 교회의 본질은 어디서 찾아야 하느냐는 것이다. 또한 그는 한국교회를 물량주의화 했다는 비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으리라는 것이 많은 목회자들의 결론이다.

▨… 사람에 대한 평가는 생전 보다는 사후에 정확해지는 경우가 많다. 가려졌떤 사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오스카 와일드가 숨을 거두며 한마디를 남겼다. “나는 이제까지 살았던 것처럼 죽는다. 분에 넘치게.” 조용기 목사는 죽음 앞에서 남기고 싶은 말이 없었을까. 에두르더라도 목사는 담임하는 교회의 크기에 따라 존경받는 것은 아니다라고 일갈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을까. 혹시라도 있었다면 큰 박수를 받았을텐데… 오호 애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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