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바이러스가 2년째 지속 되면서 그동안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였고 축복이었는지 깨달은 그리스도인이 많다.

한국교회가 이제까지 쌓아올린 성장의 역사는 참으로 hoher Flug! 높은 비상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비대면 예배’라는 생경한 신조어를 익숙하게 사용하고 있고, 세계 최고로 발전한 인터넷 환경은 비대면 예배를 충분히 뒷받침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전엔 낯선 것이었지만 지금은 익숙한 것이 되었고, 익숙한 것은 시간이 지나면 불행하게도 다시 형식적이며 율법적인 것이 될 것이다.

나라가 망했을 때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은 것을 원인이라 생각하며 새로운 각오와 마음으로 남다른 열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다.

시간이 지나 그것은 종교 권력이 되었고 기도와 선행은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되었으며, 예배는 형식이 되었고 율법은 정죄의 도구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가치관에서 은혜와 용서를 말하고 치유를 행하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이상하고 낯설고 율법에 어긋나 보였다.

태초의 말씀이신 로고스 하나님이 직접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말씀을 하셨어도, 그들은 그것을 거부하고 마침내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약 40년 후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루살렘 성전은 초토화되고, 그로 인해 그들의 형식적인 예배는 더이상 드려질 수 없게 되었다. Tiefer Fall! 깊은 추락!

그러나 그 깊은 추락에서 다시 새로운 예배가 드려지기 시작했다. 흩어진 성도들은 복음을 전했고 성령님의 임재 가운데 예배했다. 영혼이 살아났고 기적이 일어났으며 교회는 다시 세워지기 시작했다.

비로소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그런 면에서 한국교회의 미래와 성결교단에 소속된 교회들의 미래를 함께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지금까지 추구해온 교회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우리는 하나님을 믿은 것인지 아니면 교회를 믿은 것인지, 하나님을 믿은 것인지 아니면 종교화된 예배 자체를 믿은 것인지 근본적인 질문 앞에 다시 서야 할 것이다.

A.W.토저는 “오늘날 기독교는 세상과 섞여 어울리고 같이 돌아가기 때문에 세상과 기독교의 명확한 구분이 사라졌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비겁한 타협뿐이다”(P. 149, 이것이 그리스도인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세상에 매몰된 교회는 하나님마저 세상의 가치관으로 보게 된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된다는 것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기에 진입한 한국교회와 우리 성결교단에 소속된 모든 교회들이 교회의 세상에 대한 소명과 사명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다시 새롭게 일어서야 할 것이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라고 한다. 역사적으로 추락의 위기에서도 높은 비상을 향해 나아갔던 것처럼 성결교회의 위상을 되살려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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