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가 예배당 수용인원을 방역이라는 이름 아래 규정하는 것이 과연 정당하고 옳은 일인가를 논하기에 앞서 교회가 어떻게 대응을 하여야 하는 가를 생각해 본다.

한국기독교학술원 원장 이종윤 목사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가장 중요하고(the most Momentous), 가장 긴급하며(the most Urgent), 가장 영광스러운 것(the most Glorious)이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사람을 기쁘게 하거나 복을 받는 도구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들어서 도움이 될 교양강좌나 청중을 즐겁게 하는 찬송이 아닌 노래를 하거나 연예인처럼 인기 있는 배우가 되어 강단에 나타나 청중을 휘어잡는 마술사로 목사가 인식된다면, 한국교회는 그 수가 얼마나 모이든 그것은 교회라 할 수 없다”고 하였다.

기독교의 영성은 예배의 영성이며, 예배의 영성은 장소와 무관하지 않다. 또한 예배를 드리는 장소와 환경은 무시할 수 없으며, 예전을 경시하는 예배는 거룩하고 신성한 예배의 영성을 대신할 수 없다.

방역과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규제 아래 행해지는 비대면 예배는 종교를 문화로 동화시키는 발상의 위험이 있다. 예배를 문화행사로 폄하시키는 위험이 있다.

이미 정부의 일각에서는 교회를 종교단체로 규정하고 사회단체와 동일시하고 있다. 교회는 장소의 영성을 회복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교회의 규모가 다르겠지만, 정부가 수용인원을 제한하고 규제한다면, 목회자는 정부가 제시하는 예배당의 수용인원에 맞추어 주일 예배의 횟수를 조직적으로 늘려 시행하는 방법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주말인 토요일 오후부터 주일 밤까지 2~3시간 간격으로 교구별로 또는 구역별로 모여 예배를 드리면 된다.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주일예배의 횟수를 늘려 교인들이 거룩한 예배당에서 자유롭게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목회자의 수고와 희생을 제안한다.

몇 해 전 필자는 본당 리모델링 공사를 하게 되었을 때, 주일예배를 소예배실에서 아침 7시 30분부터 저녁 9시까지 1시간 30분 간격으로 예배를 드린 적이 있다.

이를 경험 삼아 비대면 예배의 상황을 대면 예배로 전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좀 더 실제적으로 제시한다면, 교구와 구역을 조직적으로 관리하면서 토요일 오후 1시 30분, 3시 30분, 5시 30분, 7시 30분. 주일 오전 7시, 오전 9시, 오전 11시, 오후 1시, 오후 3시, 오후 5시, 오후 7시, 오후 9시. 이렇게 모여 예배를 드리며 신앙공동체의 힘을 규합하고, 장소의 영성을 경시하며 비대면 예배를 일상화하려는 이들의 그릇된 생각을 제어해야 한다.

교계 일각에서는 비대면 예배를 옹호하며 정당화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비대면 예배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리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이미 교계에 회자된 통계에 의하면 비대면 예배는 예배의 거룩성과 경건함을 훼손하며 영성을 약화시킨다고 하였다.

기독교는 예배공간과 예배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방역이라는 이름으로 집회의 자유를 침탈당하는 사회에서 정부의 방침에 순응하는 것만이 교회가 사회질서에 협력하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지하철이나 대형마트를 가보자. 과연 일정 장소에 일정 숫자대로 이용하며 사회적 거리두기가 제대로 실행되고 있는가?

정치방역으로 회자되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기독교와 정부의 갈등의 원인이 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갈등으로 인한 침탈이 팬데믹 시대에 교회의 존재 이유를 침해당하지 않도록 교회는 모이는 힘을 규합하여야 한다.

목회자는 양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찾아오는 성도들을 대면하여 위로하고, 함께 기도하기 위하여 자기희생을 하며, 교회는 예배하고 기도하기 위하여 항상 문이 열려있어야 한다.

오늘의 시대에도 성경은 말씀한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그리하자”(히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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