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편 – 번제

     이성훈 목사
   (임마누엘교회)

처녀 목회 시절 기억나는 어느 성도님의 이야기입니다. 그 성도님은 교회에서 별로 말이 없으셨으며, 연세가 꽤 된 분이었습니다.

교회에서 그렇게 두드러지게 활동하시는 것은 없었어도 항상 예배 자리와 기도 자리를 꾸준히 지키는 모습 속에서 상당히 신실하다고 여겨지는 그런 분이었습니다.

목회자에게 그리 친근하게 대하시는 편도 아니었고, 항상 거리를 두며 어려워하셨습니다. 어느 날 이분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목사님 정말 죄송해요.”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뜻밖의 말씀에 “뭐가요 집사님?” 하고 되물었더니 “제가 가진 게 별로 없어서 헌금도 많이 못 하고 목사님께 별로 도움도 못되어서요” 하시는데 순간 할 말을 잃었습니다.

이분이 그동안 왜 그렇게 교회에서 주눅이 들어 있었고 의기소침해하셨는지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어깨를 펴고 당당히 자기의 목소리를 내며 살아가는 분들은 바로 …”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세월이 흘러서 그분의 이름조차 가물가물하지만, 어딘가에서 이 글을 읽어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제사법 가운데 ‘번제’라고 하는 제사법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태워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히브리어로는 ‘올라’라고 하는데 ‘어떤 것을 올린다’하는 의미로서, 짐승이 제 단위에 바쳐져서 불에 타면서 연기가 되어 하나님께 향기로 올라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번제는 본래 제사 자의 온전한 ‘헌신’과 ‘섬김’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속죄’를 위한 기능적 역할도 합니다. 번제의 본래 기능인 ‘전적인 헌신’의 표시에 뒤따른 부수적 효과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레 1:4)

욥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욥은 아침마다 명수대로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는데, 이는 자기 아들들이 부지중에 죄를 범하였을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였습니다(욥 1:5).

그러나 일반적으로 ‘속죄제와 속건제’가 죄를 속하는 제사라는 점을 고려할 때 번제와의 차이점이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속죄제와 속건죄’는 ‘자범죄’를 위한 제사요, ‘번제’는 ‘원죄’를 속하기 위한 제사라고 주장하지만 이를 뒷받침할만한 증거가 그리 충분하지 않습니다.

여하튼 번제가 완전한 섬김과 헌신을 위한 제사였음을 감안했을 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신 것은 아브라함에게 완전한 섬김과 헌신을 확인하기 위함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번제에 관해서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번제를 위해 드려지는 짐승은 반드시 ‘등급’으로 나누어져 있다는 점입니다.

성경에 그 등급이 구체적으로 명시된 것은 아니지만, 형편이 어려운 사람에게는 비교적 가격이 저렴하여 하나님께 드리기에 부담이 없는 ‘새’나 ‘곡식’을 바치는 것이 허용되었습니다(레 5:7, 11).

즉 제물을 드리는 사람의 신분과 경제력에 따라 차등을 두어 제물을 드리는 것이 허용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물의 크기나 종류에 따라서 효력이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제물의 종류와는 상관이 없이 하나님은 제물을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양과 수소와 숫양으로 번제를 드릴 때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레 23:18)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은 ‘새’를 통해 드리는 번제(레 1:17)와 ‘곡식’을 태워서 드리는 번제(레 2:9)를 드릴 때도 동일하게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고 하셨습니다.

제물의 가치와 종류가 아니라 하나님은 그 제물을 드리는 자의 마음을 기쁘게 여기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어떤 제물이냐’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누가 드리느냐’였습니다.

이는 가인의 제사가 실패한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가인과 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다’라는 사실을 통해서 ‘누가 어떤 마음으로 제물을 드리느냐’하는 것을 ‘무엇을 드리느냐’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셨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과부의 두 렙돈에 대해서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반면에 그 과부와는 상대도 되지 않을 만큼 많은 재물을 드렸던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성령을 속임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목사님 죄송해요. 헌금 많이 하지 못해서요”라며 하시며 연신 죄송하다고 하시던 표정이 목회하는 내내 떠나지 않습니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