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하였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가 가슴 깊이 그리워지면

눈 내린 광화문 네거리 이곳에 이렇게 다시 찾아와요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눈 덮힌 조그만 교회당

-이문세 <광화문 연가>-

  박순영 목사(장충단교회)

“기억은 인간 존재 그 자체다.”라고 말한 이가 있습니다.(박문호「뇌과학의 모든 것」) 기억된 정보가 없으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양하고 오래된 기억이 깊이 저장되어 있는 상태에서 외부에서 비슷한 정보가 들어오면 창의적 발상이 튀어나옵니다.

기억의 생성과 저장 그리고 인출 과정을 통해 목표를 향하여 새롭게 조합하여 가는 의도적 행동이 인간의 특성입니다.

한 사람의 삶의 여정에 아프고 쓰리고 서러운 것들의 기억이 추억이 되고, 외로울 때면 가슴 한 켠에 그림처럼 남아 있는 그 사람과 장소가 그리워집니다.

이문세의 노래 <광화문 연가>는 기억과 추억, 그리고 그리움을 가장 서정적으로 읊어낸 제 5집(1988)에 수록된 곡입니다.

제목은 넓은 광장과 어마어마한 자동차의 행렬을 연상케 하는 경복궁 정문 광화문이지만 내용은 덕수궁 돌담길을 지나 천천히 걸어가는 산책로를 수채화처럼 감성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남아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간 왕조에 대한 지식이나, 돌담을 쌓은 덕수궁의 문화유산 답사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사랑하며’ 다정하게 손잡은 사람들이라고 노래합니다.

지난날 향기로웠던 시절이 그리워질 때면 하늘로부터 순결한 은혜가 소복이 쌓인 네거리를 다시 찾아 정동길을 향한 첫 발걸음을 내딛으려 합니다. 우리의 앞에 있던 이들이 모두 떠났고, 언젠가 우리도 세월을 따라 떠나갈 것이지만 아직 남아 있는 언덕길 조그만 예배당-여전히 시대의 희망이며 사랑의 원천인-을 현재진행 미완료형으로 노래하였습니다.

나에게 ‘연가(戀歌)’를 부를 수 있는 기억과 추억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싶어졌습니다. 충정로 언덕길에 남아 있는 조그만 예배당을 보면서 애오개 연가를, 성주산 언덕길에 꽃처럼 피어날 5월을 향하여 걸어가고 있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소사동 연가를 부를 수 있는 그리움이 있다면 성결교회와 서울신학대학교는 여전히 이 시대와 민족교회의 희망입니다.

그 기억의 조각들을 찾고 더듬어 다음 세대에게 희망의 근거를 남겨놓을 ‘성결교회 역사박물관’의 역사자료 수집이 시작되었습니다.

90년 전 발간되었으나 ‘미발견’ 상태였던「성결을 쉽게 아는 길(이명직)」을 발견하였고, 초기 선교사들의 저술, 납북 순교자의 유품 등의 기증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서울신대를 후원하기 위한 3년에 걸친 재정지원을 교단총회에서 결의하였고, 지난 주간에는 대학기본역량진단 평가를 잘 통과하여 국가로부터 3년 동안 매년 재정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이 모진 더위를 잊게하였습니다.

사명의 길을 걷는 신학생들이, 115년의 역사적 유품이, “아직 남아 있어요···♬”하는 서울신대 연가와 역사박물관 연가를 우리 모두 함께 부르고 싶어지는 계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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