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와 예배 - 레위기 편

 

이성훈 목사(임마누엘교회)
      이성훈 목사
    (임마누엘교회)

레위기의 제사법에 관해 설교나 설명이 종종 제사장에게 초점을 맞추어지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제사법은 ‘제사장’보다는 ‘제사자’들의 역할이 훨씬 더 많습니다.

이를테면 제물에게 안수하고 제물을 도살하는 일은 ‘제사장’이 아닌 ‘제사자’들의 몫입니다.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뜨고, 내장과 정강이를 손질하는 일도 역시 ‘제사자’의 역할입니다.

언젠가 군(軍)에서 돼지를 도살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도살하는 일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님을 그때 알았습니다. 하물며 각을 뜨고 내장과 정강이를 손질하는 일까지 ‘제사자’가 하는 일임을 감안하면 제사에서 궂은일은 모두 ‘제사자’의 역할입니다.

그만큼 ‘제사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를 위해 철저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이는 오늘날 하나님께 예배하는 예배자가 어떠한 태도로 예배에 임해야 하는가를 잘 보여 줍니다.

예배를 드릴 때 우리는 종종 설교자가 내가 감동하는 설교를 전하는 것을 들으며 훌륭한 예배를 드렸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은혜를 받았다’ 혹은 ‘못 받았다’에 관한 기준을 설교자의 설교에 두곤 합니다.

물론 예배를 통해 우리는 은혜를 받기도 하고 감동도 받으며, 성령 충만함을 경험하고 병 고침 사건이 일어납니다. 성령의 임재가 있을 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이와 동시에 사단이 떠나는 역사가 있습니다. 제자들이 권능으로 병을 고치며 기뻐할 때 예수님은 하늘에서 사단이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보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예배드림’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임재의 결과이지 이것 자체가 예배의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거룩한 산 제물이 되라고 하였습니다.(롬 12:1) 예배의 중심은 하나님이고, 우리는 피조물로서 피조물이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것입니다.

만일 주일에 예배를 빨리 드려 놓고 나머지 시간을 내 욕망을 향해 달려가기에 급급하다면 이는 참다운 예배자의 태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를 받으시기 전 먼저 아벨을 받으셨고,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시기 전 먼저 가인을 받지 않으셨습니다.(창 4:4~5) 그만큼 예배하는 예배자가 어떠한 자세를 가졌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왕이 된 후, 3만명의 사람들을 보내서 여호와의 궤를 운반하던 중 웃사가 흔들거리는 법궤를 ‘붙들었다가’ 궤 곁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석 달 뒤 다윗 왕은 언약궤를 이번에는 채를 법궤에 꿰어서 말씀대로 어깨에 메어 예루살렘으로 운반합니다. (대상 15:14~15) 그때 다윗은 ‘힘을 다하여 춤을 추었다’(히. 마카르, 삼하 6:14)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춘 춤은 단순히 어깨 춤이나 왈츠를 춘 것이 아닙니다. 머리가 땅에 발이 하늘로 솟구치는 듯한 동작의 격한 춤이었습니다. 현대말로 하면 비보이 동작과 같은 춤을 추며 기뻐하셨던 것이지요.

웃사는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다고 해서 죽었는데, 당연히 벼락을 맞아도 시원치 않을 불경건한 태도를 보인 다윗은 멀쩡했습니다.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은 웃사가 법궤를 붙잡은 것이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과 야망 때문이요, 다윗의 ‘여호와 앞에서’(삼하 4:16) 춘 춤은 하나님의 임재에 감격한 예배자의 모습이었음을 왜 모르셨겠습니까! 하나님이 아모스 시대에 우상숭배로 무너진 ‘다윗의 장막’을 회복하리라고 말씀하신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하염없이 사람을 기다리시고 찾으십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똑똑한 사람이나 힘 있는 사람을 찾으신다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할 ‘예배자’를 찾으신다고 했습니다.(요 4:23)

코로나19로 인하여 예배의 열망을 점점 잃어가는 이 시대에 들려주시는 주님의 안타까운 음성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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