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들은 내가 이 벽난로 앞에서 손으로 이 청동상을 쥐고서 모든 시선을 받고 서 있을 걸 예견했던 거야. 나를 잡아먹는 이 모든 시선들을…. 이런 당신 둘밖에 안돼? 난 당신들이 훨씬 많은 줄 알았지 뭐야…. 그러니까 이런 게 지옥이군, 정말 이럴 줄은 몰랐는데 당신들도 생각나지, 유황불, 장작불, 석쇠, 아! 정말 웃기는군. 석쇠도 필요없어, 지옥은 바로 타인들이야.”(장 폴 사르트르, 지영래 역 「닫힌 방‧악마와 선한 신」)

▨… “인간은 자유하도록 저주(형벌)를 받았다”라고 인간에 대해 날카롭지만 반기독교적인 이해를 거침없이 내뱉은 사르트르는 ‘닫힌 방’이라는 희곡을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의 타인에 대한 이해를 그 밑뿌리에서부터 뒤흔들어버렸다. “출구가 없는 방”에 남자 하나, 여자 둘이 등장했다. 이미 죽은 사람들이다. 이 세 사람 사이에 사적인 공간은 허락되지 않았고 서로의 생각과 과거는 발가벗겨졌다. 세 사람 모두 서로의 시선에 각자 포로가 되었다.

▨… 사르트르는 그 상황을 그 어떤 신적인 계시도 자신을 정당화해 주지 못하는 상황으로 설정하려 했던 것일까. 출구없는 공간에서 나를 빤히 바라보며 나의 존재를 훔쳐가는 시선을 줄곧 마주해야만 했기에 인간관계의 왜곡과 발가벗겨진 자기자신과의 대면을 거부할 수 없었던 남자는 마침내 단말마의 비명같은 소리를 질렀다. “지옥은 바로 타인들이야.”

▨… 뉘 있어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는 사르트르 철학의 명제를 뒤엎을 수 있으리오마는 “타인이 지옥이다”라는 그의 선언이 하나님의 종들을 거침없이 흔들었음을 뉘있어 또한 부정할 수 있을까.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도 ‘옥중서간’에서 자신을 향해 질문했었다. “나는 정말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말하는 것과 같은 사람일까? 아니면 나는 내가 내 자신에 대하여 알고 있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 다행하게도 본회퍼 목사는 자신의 고뇌의 결과를 우리에게 명확하게 제시해 주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른 사람을 형제자매로 주신 것은(타인은 지옥이 아니다!) “그들의 머리 위에서 창조주를 발견하게 하기 위함”(「신도의 공동생활」)이라고… 이 말씀이 성결인 지도자들의 가슴 속에 살아 있다면 아니, 목사에게는 성서의 명령을 거부할 자유나 권리, 능력이 없음을 긍정한다면, 총무선거의 결판을 사회법에서 구하는, ‘타인이 지옥인’ 상황은 애초에 빚어져서는 안되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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