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는 육체적·경제적·물리적·가시적 요소뿐 아니라 정신적·심리적·영적·비가시적 요소도 매우 중요하다. 아무리 신체가 건강하고 경제적으로 풍요롭다 해도, 그 영과 정신이 병들어 있다면 결코 행복하고 평안한 삶을 살 수 없다.

코로나19 방역도 마찬가지다. 전염병을 예방하는 것은 물론 매우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오로지 그 하나에만 몰두하여 다른 요소들을 경시하고 외면한다면, 결국 사람들은 내면이 병들고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다. 종교의 역할이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특히 기독교는 이 땅에 전래된 이래, 백성들의 영혼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한편 사회 각 영역의 발전과 성숙을 위해서도 많은 기여를 해 왔다. 그 공로와 업적을 일일이 다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발생 초기부터 지금까지 기독교는 애물단지 취급을 당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조금만 확산되는 조짐이 보이면 교회의 예배를 제재하는 일을 너무나 쉽게 행하고 있다.

일선 교회들이 가장 답답한 부분은, 이처럼 교회의 예배를 제재하는 조치에 객관적·합리적·과학적·의학적 근거가 빈약하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규모의 공간에 어느 정도 이상의 인원이 밀집했을 때, 또는 특정 행위를 할 때나 또는 하지 않을 때 감염 위험이 높다는 납득할 만한 증거나 수치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예배당에서 철저한 소독과 거리 두기를 지켜 가며 겨우 1주일에 한 번 드리는 예배까지도 막겠다는 것에 정상적인 교회라면 흔쾌히 동의할 수 있겠는가.

그러한 조치가 정말로 방역에 효과가 있고 헌법적 가치에 합하다면 마땅히 모든 기독교인들은 적극 솔선수범할 것이다. 그러나 방역 당국의 조치는 형평성과 객관성도, 과학적·의학적 근거도 결여돼 있다.

어떤 시설은 과도할 정도로 막으면서 어떤 시설은 과도할 정도로 방치하고, 정부 지도자들 스스로도 전혀 모범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방역수칙을 지키며 드리는 예배를 유독 심하게 제재하고 매도하는 것은 계속되고 있다.

몇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예배당에 20명도 안 되는 인원이 예배를 드리는 이 서글프면서도 한심한 광경을 언제까지 봐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더욱이 정부 당국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종교계에 대해 어떤 조치를 내리기에 앞서, 종교계 지도자들의 의견을 듣고 반영한 적이 없다.

매번 선조치 후 각계 당사자들이 항의하면 형식적으로 들어줬을 뿐이다.

기독교계에는 한교총처럼 대화와 타협의 길을 모색하는 이들도, 예자연처럼 강력히 항의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결국 정부의 고집은 꺾지 못했다.

이번에도 정부는 지난 7월 12일부터 2주간 수도권에 새로운 거리 두기 4단계로 일방적으로 격상해 놓고, 종교계의 반발이 일자 종교계와 예외적 허용을 협의하겠다고 밝혔으나, 이후 어떤 협의를 했는지 그 결과가 어땠는지 일절 발표도 없이 4단계를 2주간 연장했다.

비수도권 중에서도 몇몇 지역이 4단계로 격상됐다. 한국 기독교계는 그간 어렵고 억울한 많은 사정들을 뒤로하고 방역을 위해 최대한 노력해 오고 있었으나, 이번 조치로 한 번 더 가슴에 못이 박혔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국민들의 내면이 병들고 있다.

백신도 제대로 구해 오지 못했으면서 기약 없이 국민들을 상대로 계속 엄포를 놓고 압력을 가하는 것은 국익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도자들이 심리적·영적 방역의 중요성을 깨닫고, 보다 폭넓고 균형 잡힌 안목으로 정책을 만들고 시행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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