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다름없는 주말이다. 하늘의 구름은 뭉게구름과 먹구름이 번갈아 얼굴을 내비친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오후부터는 비가 온다는 소식이다.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안식구가 나에게 말을 건넨다.

“여보, 당신 오늘 바쁜 일이 많아요?” 듣고 있던 내가 “아니 왜?” 하니 “그러면 우리 모처럼 바람 한번 쇠러 나갈까요? “한다.

마음으로는 오늘 일기가 그리 좋은 것은 아닌데 왜 나가자고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안식구 역시 직장인이라 알게 모르게 받은 스트레스를 풀려고 하는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래, 어디 한번 나가보지 뭐, 단둘이 당신하고 말이야” 하며 크게 미소를 지으며 두 손까지 활짝 펴고는 “좋습니다. 빨리 준비해요.”라고 말하고는 나는 내 방에 들어가 작은 배낭에다 몇 가지 다과를 챙겨서 가벼운 옷차림으로 거실로 나왔다.

안식구 역시 갈 채비를 마치고 나왔다. 속으로 어디로 갈까 하고 생각하다가 얼마 전 같이 정구 운동을 하는 지인분께서 세 번이나 식구와 같이 다녀왔다고 자랑하며 추천해 준 경북 봉화에 있는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이 생각나서 우리는 그곳으로 오전 10시경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그런데 우리는 빠른 길보다는 옛날의 정취도 느낄 겸 해서 단양과 풍기를 잇는 죽령을 넘기로 했다. 무릇 죽령이란 신라의 8대 임금 아달라이사금(阿達羅尼師今)이 영토확장을 위해 소백산맥 너머 북쪽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을 만들라고 죽죽에게 명령한다.

왕명을 받은 죽죽은 소백산 서쪽의 계곡을 따라 산맥 능선의 안부를 넘는 고갯길을 개척했다고 한다. 이 길이 바로 죽령 옛길이 아닌가.

정오가 될 무렵에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었다. 우선 눈앞에 펼쳐진 전경이 넓고 그러면서도 아늑한 곳이었다. 우리는 매표소에 가서 표를 산 후 들어가 식당에서 설렁탕을 시켜 놓고 마주 앉아 얼굴을 본다.

자주 보는 얼굴이지만 이렇게 밖에서 보니 아주 젊었을 때 데이트했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나는 말을 건넨다. “여보, 참으로 단둘이서 밖에 나와서 식사하는 것도 오랜만이네, 그렇게 보니 내가 당신한테 너무 무관심한 것 같아 정말 미안해. 앞으로 잘할게” 하고 말을 건네니 안식구 역시 “그래요, 아주 오랜만에 당신하고 나와서 대화를 나누니 좋아요, 사는 것이 뭔지, 왜 그리 바쁜지, 얼마든지 시간을 내면 어떻게든 낼 수 있는데 오늘처럼 말이에요” 하며 모처럼 환한 웃음을 얼굴에 그렸다.

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본격적으로 관람을 시작했다. 지나가다가 설명해 주시는 분의 말을 전해 들었는데, 산의 굴곡을 해치지 않고 오히려 더 이쁘게 보이게 하기 위해 지붕의 모양이 디자인되었다고 한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간직한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에 위치한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보전 가치가 높은 식물자원과 전시원, 백두대간의 상징 동물인 백두산 호랑이, 세계 최초의 야생 식물 종자 영구 저장시설인 시드 볼트를 보유하고 있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수목원이란다.

특히 백두산부터 지리산까지 1,400km 백두대간은 우리나라 자생식물 33%가 서식하고 있는 중요 생태 축이며 그중 특산식물 27%, 희귀식물 17%가 있음은 물론 생물 다양성을 보존하고 증진해 대자연과 인간의 풍요로운 상생을 이끌고자 한다고 설명해 주신다.

덕분에 소중한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 내외는 무지개 정원, 꽃나무원, 만병초원, 명상숲길, 잣나무 숲길,  돌틈 생태 숲길을 거닐며 오랜만에 둘이서 사진도 찍고 살아온 이야기들도 나누고 서로 애썼다며 위로와 격려도 해주며 추억 쌓기 발걸음을 한발자국 수놓곤 했다.

오후 4시경 또 하늘이 심술을 부린다. 우리네 사랑탑 쌓기를 질투하는 모양이다. 출구가 가까워지자 제법 빗방울이 굵어진다. 서둘러 차에 오른다. 오랜만에 외출, 행복이 가득하다. 또 만들리라, 행복은 만들어 가는 것이니까. 늘 오늘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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