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무(四無)의 삶을 산 김용은 목사⌋를 읽고

13년 전 우리 교단은 큰 어른을 잃었었다. 우리는 그가 예수님을 많이 닮은 분인 줄 미처 알지 못했다. 그런데 얼마 전, 그가 개척하고 평생 섬기던 군산중동교회 70주년을 맞아 후임자 서종표 목사에 의해 편찬된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그분의 인물됨과 삶을 낱낱이 알게 되어 새삼 놀라며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이 책은 화보와 함께 그의 생애, 다양한 사역, 그를 만난 사람들의 증언, 환송사와 추모글, 그의 설교문과 즐겨 암송한 말씀 등 6부로 엮어져 있다.

이는 그의 삶과 사역이 모든 성도들에게 주님 제자로서의 ‘바른 삶’이 무엇이지 깨우쳐주고 있어 읽다보면 저절로 눈물과 감탄사, 그리고 나를 돌아보며 감동에 젖게 한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신앙 그는 1918년 정읍에서 장남으로 출생했으나 15세에 부친을 잃고 소년 가장의 무거운 책임을 위해 이발소 조수로 고생하던 중 주인 아줌마의 전도로 처음 교회에 갔다.

‘하나님 아버지’로 부르며 기도하는 성도들을 보며 놀란다.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을 영원한 아버지로 섬기려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

이제 그의 삶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허전한 마음에 하늘 아버지가 들어오심으로 긍정적인 삶으로 변화된다.  

빛으로 이끌림을 받은 삶 18세에 공부하고 싶은 욕구에 일본 후쿠오카에 사는 삼촌을 생각하고 맨 주먹으로 군산으로 걸어가 월명산에서 하늘아버지를 부르며 철야기도 한다.

아침에 하산할 때 그의 앞에 구르는 작은 불빛 솜뭉치를 따라가다 선창에 도착, 일본 화물선 후쿠오카호가 정박해 있어 무작정 들어가 선장에게 호소했고 선장 호의에 무임승선으로 후쿠오카에 간다.

삼촌 집에 머물며 낮엔 일하고 야간중학교에서 공부하다 그곳 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교회 영수의 딸과 결혼한다.

6.25로 가족 23명 순교 1947년 서울신학교에 입학, 재학 중 고향에 두암교회를 개척목회하고 1950년 5월 졸업한다.

그러나 한 달 후 북한 남침으로 6.25 전쟁이 발발, 몇 번 죽을 고비를 넘기는 도피생활 중에 그곳 공산분자들에게 모친과 동생 등 가족과 친척 23명이 집단학살을 당한다.

피를 토하는 분노에도 주님의 말씀 따라 체포된 원수들을 다 용서하고 그들은 신자가 된다.

빛으로 인도 받은 중동성결교회 개척 어느날 아침 다시 나타난 빛을 따라가 그곳에 중동교회를 개척한다.

가난한 지역이지만 성령충만한 설교와 사랑으로 교회는 날로 부흥하여 성전을 3차에 걸쳐 건축, 오늘의 대 교회를 이룬다.

그는 1971년 어부지리로 총회장이 되고, 주님처럼 소외자들을 위한 고아원, 농맹아학교, 교도소, 장애인, 외항선 선교, 고군산 영혼들을 위해 추명순 전도사 파송해 8교회를 설립하는 등 불철주야 선한목자로 섬기다 1989년 원로목사, 2008년 90세로 소천한 큰 목회자였다.  

무소유 삶의 철학, 사무(四無)의 삶 그는 사무(무통장, 무토지, 무주택, 무패물)의 삶의 철학으로 살았다.

헌신 전에 사둔 토지는 교회건축에, 선물 받은 패물은 가난한 자들에게, 사례비는 최소생계비만 빼고 구제금으로, 은퇴 당시 교회에서 드린 주택도 사후 교회에 기증(고군산 성도들 숙소로), 시신마저 전북의대로 기증했다.

그럼에도 그의 자녀(3남 4녀)는 하나님의 은혜로 교회지도자로 성장하여 아버지의 뜻을 잇고 있다. 그는 인류에게 복음을 주시고 육체를 십자가 제물로 인류를 구원하신 주님을 닮았다.

받는 것보다 결핍한 자들에게 사랑과 물질을 아낌없이 주는 것을 당연히 여긴 그는 예수님의 참 제자였다. 한국교회 한경직 목사님의 무소유 목회에 비견할만한 한국교회의 큰 모델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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