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상19:4~8)

탈진해서 우울감에 빠진 사람에게 가장 가혹한 말이 ‘힘내라’라고 한다. 힘을 낼 수 없는 질병에 놓여있는 사람에게 힘 내라는 것은 상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배려 없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도 혼자 동떨어진 외로운 상황속에서 육체가 피곤하고 위험이 다가온다면 두려울 수밖에 없다. 세상에 내 편이나 나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느끼면 마음은 예민해지고 부정적인 생각으로 상태를 악화시키곤 한다.

갈멜산의 기적 같은 승리 엘리야가 하는 말들은 너무도 연약하고 실망스럽다. “내일 너를 죽일 것이다”라는 이세벨의 위협에 도망치는 모습도 초라하지만 내 생명을 거두어 달라는 한탄은 패배자의 모습이다.

그러나 엘리야의 고백은 진짜 죽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살려달라는 외침이었다. 힘이 넘치고 자신감 있던 출발점인 갈멜산의 모습은 사라지고 아무도 없는 광야 로뎀나무 아래의 지친 엘리야는 오늘 우리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 상황속에서 취업과 진로로 걱정하는 청년, 희망을 안고 창업했지만 하루하루 버티기 힘든 상인, 왕따를 당해 괴로운 청소년, 우울증으로 잠도 못 자고 죽고 싶은 중년의 주부, 사명을 따라 시작했지만 육적, 영적 탈진으로 도움이 절실한 목회자. 하루 평균 36명이 자살하는 대한민국에서 홀로 외로이 힘든 시간을 버티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디서나 볼 수 있고 나 자신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닫는다.

엘리야를 찾아온 천사는 그를 향해 꾸짖거나 지시하지 않는다. 다만 ‘먹이고’ ‘어루만져’줄 뿐이다.

놀라운 장면이다. 하나님의 명령이나 계시를 전하는 천사가 아닌 위로를 주는 돌봄의 모습이다.  

말로 상처를 받고 침묵으로 위로받는다는 말이 있다. 공감의 힘이다. 함께 있고 내 손을 잡아주는 터치의 능력이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위해 천사를 보내셔서 어루만지는 터치의 힘을 베푸신다. 오늘 우리 교회가 스스로 일어날 힘이 없는 영혼들에게 참된 위로처가 되었으면 좋겠다.

효과없는 교훈과 조언을 쏟아내는 무공감의 강단이 아니라 ‘일어나 먹으라’고 말하는 한 그릇 밥이 있는 공동체가 되길 소망한다. 진심어린 어루만짐이 있는 따뜻한 모임은 누구라도 살려낼 수 있기 따문이다.

위로부터 오는 참된 위로를 경험한 엘리야는 시키지 않아도 일어나 ‘음식물의 힘을 의지해서’ 호렙산으로 간다. 호렙에서 하나님을 만나 사명을 다지고 새롭게 사역을 이어간다.

교회마다 하나님의 위로가 가득해서 힘들고 지친 성도들에게 뿐 아니라 목회자들도 새 힘을 얻게 되길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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