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을 기점으로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 버마 사람들이 끊임없이 회심하고 세례를 받을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소서.” 1819년 6월 27일, 최초의 미국 해외 선교사인 아도니람 저드슨(Adoniram Judson, 1788~1850) 목사는 자신의 일기장에 감격에 넘쳐 간절한 기도 한 구절을 적었다. 그가 버마에서 복음을 전도하기 시작한지 6년 만에 버마인 멍 나우(Moung,Nau)에게 첫 세례를 베푼 기쁨을 곱씹으며.(참조:「아도니람 저드슨의 생애」)

▨… 저드슨 목사의 선교사역은 필설로 다할 수 없는 고초의 연속이었다. 원래는 말레이시아의 페낭으로 가기 위해 배를 탔으나 인도와 아프리카를 거쳐 그가 배에서 내린 곳은 엉뚱하게도 버마였다. 영국과 버마 사이의 전쟁으로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기도 했던 그는 선교사역이 왜 고난의 길인가를 증명하는 삶을 살았다. 그가 숨을 거둔 시점에서 버마에는 63개처에 교회가 세워졌고 7,000여 명이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 이땅에 체류하는 미얀마인(버마) 대부분은 노동자들이다. 우리나라에는 많은 외국인들이 체류하고 있지만 아시아 최빈국 중의 하나인 미얀마인은 상대적으로 극소수일 뿐이다. 미얀마 군부의 독재가 노동자 파견의 길마저 닫게 만든 탓이다. 이 미얀마인들이 최근의 사태를 계기로 한국교회를 향해 미얀마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불교국가로 알려진 미얀마에 그루터기로 뿌리만 살아 ‘남은 자’들이 있음을 알리고자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다.

▨… 아시아에서 세계를 향해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는 유일한 교회가 한국교회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면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빚진 자’라는 신앙고백 위에 서야만한다. ‘한국교회가 빚진 자’라는 역사적 사실은 이 땅의 교회가 6.25 한국전쟁에서 어떻게 ‘남은 자’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었는가를, 또한 일제 강점기와 군부독재를 어떻게 헤쳐나올 수 있게 해주었는가를 뒤돌아보게 해주지 않는가.

▨… 쇠렌 키르케고르였던가. “인생은 앞을 보며 살아야 하지만 인생에 대한 이해는 뒤돌아보며 할 수밖에 없다”고 일러주었던 사람이…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아도니람 저드슨 목사가 거둔 7,000명의 믿음의 고백자와 63개 교회의 남은 그루터기가 미얀마에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 그루터기에 새순이 돋아날 수 있도록 돕는 데에 우리의 빚진 자로서의 의무가 있다고 한다면 너무 앞서 나가는 것일까. 우리 성결인들이 미얀마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는 ‘빚진 자’임을 재확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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