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고교 친구들의 모임에 나갔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도 몇몇이 있었다. 누구는 벌써 저세상으로 갔느니 또 누구는 건강 때문에 모임에 나오고 싶어도 못 나왔느니 하며 저마다 친구 소식을 전한다. 듣고 있으니 살아있음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새 고희(古稀)가 아닌가! 이렇게 담소를 나눈 후 어느 친구가 우스운 이야기를 하겠다며 입을 연다. 할머니와 손자가 사는 집안 이야기란다. 초등학교 4학년 손자가 할머니한테 자기 생일날 간곡히 부탁하더란다.

“할머니, 오늘 아침, 내 생일이라서 미역국을 끓여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하고는 “할머니한테 저녁 때 친구들을 데리고 올 테니 생파와 생선을 꼭 부탁해요” 하며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더란다.

그래서 할머니는 점심 후 시장에 나가서 생파와 생선을 잔뜩 사서 요리를 잘해 놓고는 손자 녀석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친구들과 손자가 와서 할머니가 정성껏 차려놓은 생일상을 맞게 되었다.

그런데 손자 녀석의 표정이 그리 밝지 않았다. 할머니는 속으로 ‘이상하다. 반찬과 음식 맛이 이 녀석에게 맞지 않나’ 하고 걱정만 했다. 그 녀석들도 파로 만든 음식과 생선 음식에는 별로 젓가락이 가지 않고 평소 먹던 음식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얼마 후 손자가 할머니한테 살며시 오더니 “할머니, 친구들에게 줄 생일선물은 어디 있어요? 나도 답례를 해야 하는데”라며 선물을 달랜다. 할머니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다.

당황한 나머지 할머니는 얼른 방으로 가서 친구들 숫자만큼 작은 용돈을 봉투에 넣어 손자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어 겨우 어려운 순간을 모면했다고 한다. 친구들이 다 가고 난후 할머니는 손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얘야, 진작 네가 생일선물을 준비해달라고 했으면 이 할머니가 준비했지.” 듣고 있던 손자 녀석은 “아니, 제가 아침에 생파와 생선을 부탁드렸잖아요?” “그게 뭔데?” “생파는 생일파티고 생선은 생일선물이잖아요?” 하며 말한다.

이제야 할머니는 “그랬구나, 미안해, 이 할머니가 몰라서 그랬어” 하며 손자 녀석을 달래주었다고 한다. 서로 의사소통이 안 돼서 벌어진 일이다. 의사소통을 원만하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세대 간, 시대 변화에 걸맞은 배움에 동행해야 한다.

그 방법의 일환으로는 손주들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 물론 그들의 언어를 몰라도 세상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는 말들이다. 그러나 그들과 친해지고 싶고 그들을 이해하고 싶다면 내 손주가 어떤 말들을 쓰고 있으며 무슨 뜻인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외되기 쉽다. 설령 이해가 안 되거나 모르면 묻는 것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처음에는 자존심이 상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손주에게 자신감을 주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손주들은 자신들의 세계에 관심이 있구나 하고 마치 선생님이 된 것처럼 매우 좋아하고 가르쳐 주려고 하고 나아가 자신들과 같은 세계에 존재한다는 유대감을 갖게 된다.  아울러 그들의 언어를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

왜 좋은 한글 놔두고 그따위 말들을 쓰는지 원, 세종대왕이 하늘에서 보고 얼마나 속상하겠니? 하는 말들을 한다면 더 손주들과 소통하는 것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손주들은 유행에 민감하고 그 중심에 자신이 있기를 원한다. 그들의 언어를 비난하는 것은 그 말을 사용하는 손주를 비난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유행하는 언어라고 해서 모두 좋은 뜻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혹시라도 손주들의 입에서 낯선 단어가 튀어나올 때는 처음 듣는 말이네, 무슨 뜻이니? 하고 물어보아야 한다. 뜻을 모른다고 한다면 우선 알게 해야 한다.

이럴 때는 충분한 논거를 가지고 설득해야 한다. 배움은 끝이 없고 인생에서 늘 핵심이다. 특히 인생 2막을 시작하는 전환기에는 더욱 실감한다.

평생 지속적인 배움은 세대 간의 소통을 넘어 우리 자신의 성장과 영혼을 가꾸어 나갈 수 있다. 돌아오는 길에 그 친구의 소통 중요성이 자꾸 웃음을 짓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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