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성결교회의 뿌리는 무엇인가? 그것은 18세기 존 웨슬리의 성결체험이다. 웨슬리는 형식적 기독교인에 만족하지 않고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것을 위해서 고민하던 중, 그는 올더스게이트에서 성령의 뜨거운 체험을 하였고, 삶이 변화됐다.

이런 정신을 계승한 사람이 웨슬리의 후계자였던 존 플렛쳐이다. 그는 온전한 신자가 되는 길은 성령세례라고 믿었다. 성경의 능력이 없이는 온전한 신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웨슬리를 계승한 19세기 미국 감리교는 웨슬리가 그렇게 강조했던 형식적 기독교로 돌아가고 말았다. 푀비 팔머를 비롯한 많은 사람은 다시금 웨슬리의 정신으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이런 가운데 그들이 발견한 것은 성결, 곧 성령세례는 인간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의 제단에 우리 자신을 산 제사로 드려 복종시킬 때 가능하다고 생각하였다.

이렇게 해서 성결운동에서는 제단초청이 생기게 되었고, 많은 성결체험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런 팔머의 정신을 계승한 것이 19세기 성결운동이다.

이들은 웨슬리의 정신과 자신들의 경험을 종합하여 성결은 성령세례이며, 이것은 중생 이후에 순간적으로 받는 이차적인 은혜라고 정의하였다.

한국성결교회는 바로 19세기 성결운동의 성결정의를 따른다. 성결운동에서 나온 동양선교회가 일본과 한국에서 사역자를 양성할 때, 그들의 가장 중요한 목적을 바로 이런 성결을 가르치고, 체험하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이들이 소개한 성서학원 입학 광고에는 우리는 “성령세례로 졸업장을 줍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참 신자의 길을 가르쳐 주셨지만 이것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오순절 성령세례였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가 아니라 성령이 마가의 다락방에 임할 때 세상으로 나가게 되었다.

한국성결교회의 사부라고 불리는 이명직 목사는 1921년 아현동 성서학원에서 깊은 성결체험, 즉 성령세례를 받았다. 그는 자신이 목사이며 성서학원 교수임에도 불구하고 온전한 성결의 사람이 되지 못했음을 가슴 아파했다.

결국 그는 1921년 새 학기를 앞두고 하나님 앞에 “성결의 은혜를 주시든지, 아니면 성결교회 목사를 그만두게 하시든지 해주세요”라고 매달리며, “성결을 강의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결을 간증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하나님은 그에게 놀라운 은혜를 주셨고, 이 은혜는 학생들과 교수, 그리고 목사들에게 전달되었다.

1921년 동양선교회는 아현동에 5층 짜리 건물을 지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명직 목사의 성결체험을 통해서 한국성결교회가 새롭게 태어났다는 것이다.

지난 5월 31일 서울신학대학교 성결동아리에서 남군산교회의 후원으로 성결 신앙간증대회를 열었다. 많은 학생들이 온전한 신자가 되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죄악의 쓴 뿌리를 제거해 달라고 몸부림치는 가운데 성령의 은혜를 경험하고, 온전한 기독교인이 된 간증을 하였다. 이전까지 서울신대는 성결을 가르치기는 하였지만 이것을 간증하는 일에는 열심을 내지는 못했다.

이것을 계기로 다시 한번 성결교육이 이론교육만이 아니라 체험신앙이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것이 단지 서울신대만의 문제일까?

한국성결교회의 모든 신자는 세례 시에 “성결의 은혜를 사모하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목사장로 후보자들은 안수식에서 “성결의 은혜를 경험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

여기에 “예”라고 대답해야 그다음 순서가 진행된다. 하지만 “예”라고 대답한 내용이 무엇인가 묻지도 않고, 대답하지도 않는다. 단지 문답서에 나오는 형식적인 절차로 생각한다.

성결신앙이 단지 문답서의 형식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제가 되어 성령의 살아 움직이는 간증이 될 때 ‘성결의 빛’은 온 세상에 퍼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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