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제물로 밀가루를

     이성훈 목사
   (임마누엘교회)

입 속에서 뭔가 걸리적 거려서 봤더니 머리카락이었습니다. 혀가 민감해서 그런지 얇디 얇은 머리카락이 입 안에 있어도 상당히 큰 이물감이 느껴졌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하나님이 혀를 민감하게 만드셨다는 사실이 무척 감사했습니다. 만일 혀가 발 뒷꿈치처럼 무디다면 입에 웬만한 것이 들어가 있어도 여간해서는 잘 느끼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는 건강에 치명적이었을 것입니다. 어디 이 현상이 몸에만 해당되겠습니까! 죄에 관한 문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아주 작은 이물질이라도 입 안에서는 금방 느끼듯이, 죄에 대한 민감성은 내 영혼의 상태에 대한 가늠대가 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만들어 주신 제사법 중에 ‘속죄제’ 라고 하는 제사가 있습니다. 재산상의 피해를 입힌 죄에 한정하여 속죄를 하는 ‘속건제’와는 달리, ‘속죄제’는 우리가 지은 죄를 용서받기 위한 제사입니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죄’란 ‘고의적으로 지은 죄’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의 ‘죄’는 ‘내가 알지 못하는 중’에(히.네엘람 미메누 레 5:2)에 지은 죄, 즉 비고의적으로 범한 죄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죄는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레 4:13) 어기는 것에 해당합니다.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의 ‘베아쑤 아하트 미콜 미쯔오트’라는 말은 직역하자면 ‘여호와께서 금지하신 계명 중 하나라도’라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이 금지하신 계명 중 알지 못하는 중에 어기게 되는 경우 그것은 속죄제를 드려야 하는 경우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속죄제’에 관한 제물은 다른 제사 제물과는 어쩔 수 없는 경제적 여건에 의해 속죄제를 드리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없어야 했습니다.

만일 속죄제물을 준비하는데 있어서 경제 여건상 도저히 불가능하다면 이는 큰 문제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속죄제를 위한 제물만큼은 경제적으로 힘이 있는 사람들로부터 아주 가난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속죄제물을 드릴 수 있도록 배려하셨습니다.

제사장과 회중이 드릴 수 있는 수소나 숫염소에서부터(레 9장, 16장), 값으로 따지면 얼마 되지 않는 비둘기도 속죄제물로 사용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심지어는 이마저도 힘겨운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은 밀가루 1/10에바(2.2리터)도 속죄제물로 허용하셨습니다.

비록 밀가루가 피가 없는 제물이기는 했지만, 극도로 가난한 이들이 속죄제를 위해서는 밀가루일지라도 피의 효력이 있는 것으로 간주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그 분은 결코 죄에 대해서는 단호하신 분입니다. 죄를 무척이나 싫어하십니다. 마치 빛이 어둠과 함께 할 수 없듯이 하나님과 죄는 결코 함께 할 수 없습니다.

만일 죄를 지었다면 그에 해당하는 댓가를 치루고, 반드시 죄에 대해서 깨끗함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복 받은 사람이란 바로 그런 사람을 일컫습니다.(시 32:1)

왜냐하면 하나님이 쓰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의 관심은 금그릇으로 쓰임 받느냐 은그릇이냐 나무그릇이냐 질그릇이냐 하는데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관심은 아무리 금그릇이라고 할지라도 그 그릇이 깨끗하냐 혹은 그렇지 않느냐 하는데 있습니다.(딤후 2:22) 제 아무리 금그릇이라고 해도 깨끗하지 않으면 결코 쓰실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귀히 쓰는 그릇은 그릇의 종류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깨끗함에 달려 있습니다. 깨끗한 그릇이야말로 귀하게 쓰여지는 그릇입니다.

세상에 깨끗한 그릇은 없지만, 우리를 깨끗케 하시는 이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도 우리가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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