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예배하소서! “ leitourgiva”(레이투르기아)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 4:24). 한국교회에서 예배를 표현하는 용어는 예배(禮拜)라는 단어 하나뿐이다. 그 문자적 이해는 ‘예를 다하여 절한다’는 의미인데, 여기에 신학적 의미를 부여해 기독교는 예배를 ‘최상의 존재이신 하나님께 최고의 존경, 경의, 경배, 찬양, 영광을 드리기 위한 행위 및 그 의식’으로 본다. 그러나 서구교회에서 예배를 표현하는 용어는 주로 워쉽(worship), 서비스(service), 그리고 리터지(litergy)가 사용된다. 신약성서에서 예배를 의미하는 헬라어 용어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proskunevw”(프로스퀴네오, 신약에 60번 등장)는 ‘존경의 표시로 절하다’, ‘굽어 엎드리다’, ‘입맞추다’는 뜻으로 지상의 통치자들에게 존경의 표시로 신체를 굽히는 것 또는 순종한다는 의미를 지닌 말이다. 다음으로는 “leitourgiva”(라트레이아, 요16:2, 롬9:4, 12:1, 히9:1, 6)인데, ‘종이 주인에게 소속되어 자신의 상전만을 섬기며 봉사한다’는 의미이다.

그 이외에도 예배를 의미하는 또 한 가지 독특한 헬라어 단어 “leitourgiva”(레이투르기아, 눅1:23, 고후9:12, 빌2:17, 30, 히8:6, 9:21)가 있다. 이 용어는 ‘백성’을 의미하는 헬라어 ‘레이토스’(leitos)와 ‘일이나 노동’을 뜻하는 ‘에르곤’(ergon)의 합성어로 그 문자적 의미는 ‘백성을 위하여 일한다’이다.

작은 도시국가인 고대 아테네에서는 모든 일들이 집단적으로 이루어졌다. 생산을 위한 노동뿐만 아니라 공동체에서 행하는 절기축제나 종교의식은 모든 구성원의 협력과 참여를 요구하는 공동체의 일이었다. 일과 종교 생활의 분화 현상이 없었던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생산 활동이든 종교의식이든 모두 살기 위해 함께 해야 할 동일한 ‘레이투르기아’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 일상적으로 매일 일하는 생활과 예배드리는 생활이 서로 별개의 것으로 구별되지 않고 하나로 유기적인 삶의 세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 레이투르기아가 사회나 국가를 위하거나 종교의식에서 신을 위한 것이 되면 ‘섬김’ 또는 ‘봉사’라는 말로 표현되었다. 이 단어에서 오늘날 예배라고 표현되는 ‘리터지’가 유래되었다.

이러한 의미들을 종합하여 예배를 어원적으로 분석하면 크게 두 가지 기능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 기능은 헬라어 ‘프로스퀴네오’와 ‘라트레이아’의 의미가 나타내듯이 예배란 결국 하나님을 존경하고 경외하여 그 앞에 부복(俯伏)하는 일이요, 그분만을 모셔 섬기며, 오직 그분께 모든 영광을 드리는 것이다. 여기에는 예배의 대상인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과 예배드리는 예배자의 마음가짐이 강조된다. 즉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그 자체가 매우 강조된다.

그러나 예배의 이러한 기능 외에 또 다른 중요한 측면은 헬라어 ‘레이투르기아’의 의미에서 볼 수 있듯이 예배행위가 예배자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깊은 관심이다. 즉 예배를 통해 일어나는 은총을 체험한 예배자들이 삶의 원동력을 얻어 그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되며, 그 결과 일상의 삶이 거룩한 예배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예배를 드리는 것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예배의 은총이 세상의 삶 속으로 퍼져가는 측면이 부각된다.

따라서 예배란 소유 주격의 의미인 하나님‘의’ 섬김을 일컫게 되면 하나님은 예배 가운데서 인간에게 은총을 베푸시는 분으로 이해할 수가 있다. 반면에 소유 목적격의 의미인 하나님‘을’ 섬김에 초점을 맞춘다면 예배의 일반적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예배는 하나님의 일(opus Dei)인 동시에 인간의 일(opus humanis)이다.

지금 한국교회의 상황을 보면, 외부적으로는 점차 종교에 대한 사람들의 무관심이 고조됨과 동시에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전체적인 분위가 지속되면 교회가 과연 희망을 가질 수 있는가? 라는 회의적인 생각을 품을 수 있다. 고대 철학에서 희망은 헬라어로 ‘elpis’(엘피스)라고 한다. 신약성서에서 이 말은 소망 혹은 희망으로 번역하고 있다.

이 개념에다 “좋은”이라는 뜻의 eu(유)를 접두사로 붙이면 ‘euelpis’(유엘피스), 즉 “낙관하다”라는 말이 된다. 한국교회가 하루 빨리 매너리즘에서 벗어나 예배의 레이투르기아 기능을 회복하여 예배와 매일의 삶이 일치하는 온전한 예배 갱신을 이룬다면 그 미래는 분명 낙관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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