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초들이 제법 파랗게 돋는가 하면 이름 모를 꽃나무에 꽃망울이 피어난다. 보면 볼수록 사랑스럽다. 살며시 다가가 잘 자라주어서 고맙고 예쁜 몸짓으로 재롱까지 보여주어서 감사하다고 대화를 나눌 양이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밝아온다.

어디 화초들뿐이랴, 우리네 사람도 별반 다름이 없다. 화초가 사람의 애정을 먹고 자라듯이 우리 사람 또한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주고 받으며 행복을 구가한다. 그 사랑하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귀중하고 가까운 인생의 동반자가 바로 아내이다.

하지만 마음으로는 너무나 소중한 아내라고 생각하고 감사함을 가지고 있지만 좀처럼 그 고마움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종종 아내의 마음을 아프게 할 때가 있다.  

얼마 전 청주에 있는 아들과 며느리가 아내에게 전화했다. 옆에 있는 나도 우연히 듣게 되었다.

“엄마, 미안해, 엄마 생신날 가서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직장 관계로 좀 그러네, 고마워, 잘 길러주어서” 하며 아들이 말끝을 흐린다.

아내 역시 약간은 울먹이면서 “그래, 우리 아들, 엄마는 괜찮아, 애들은 잘 크고 있지? 어미도 잘 있고?” 하며 두루 안부를 묻는다.

옆에 있던 며느리가 이어 “어머님, 죄송해요, 가서 뵙고 생신 축하 해드려야 하는데요”, 늘 어머님께 감사드린다며 생일 인사를 한다. 아내 역시 “괜찮아 어미야, 너희들만 잘 있으면 돼, 여기는 걱정하지 마, 모두 잘 있으니까 알았지?”하고는 전화를 끊는다.

옆에 있던 나는 모른 척 하며 “여보, 왜 애들이 전화 왔어?” 하며 슬며시 물어본다. “아니, 내 생일이 이달 16일이니까 생일날 못 온다고 미안해서 전화 왔지 뭐”, “잘 있데?” “응, 모두 잘 있데”, “그래, 잘 있으면 되지 뭐,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 내가 있잖아” 하니 아내는 피 웃으며 “알았어요” 하며 거실로 나가버린다.

이건 또 웬일인가? 전화를 끊자마자 조금 후에 원주에 있는 사위와 딸이 역시 아내의 생일을 축하한다며 전화가 왔다. 사위가 생일날 저녁을 모시겠다고 하니 아내는 식당보다는 우리 집에서 간소하게 저녁을 하자고 한다. 정말 가족이 소중하다.

돌이켜 보면 아내도 다른 아녀자처럼 어려운 가정에 와서 부족한 나를 도와 일평생 교육 현장에 몸담게 했으며 자녀들 또한 각기 처한 곳에서 제 몫을 감당할 수 있도록 잘 양육했다.

또한 자녀들도 건강한 가정을 이루어 손자 손녀들까지 우리 내외에게 안겨주었다. 그러니 나와 아내는 더 바랄 것이 없다. 그런데도 아내는 지금도 일을 놓지 않고 직장을 가지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생일날 아침 출근하면서 하는 말 “여보, 당신 오늘 사무실로 꽃바구니 보내지 마, 알았지요?” 하며 여느 때처럼 출근한다.

속으로 ‘아 참, 내가 어제 잘 아는 꽃집에 이미 주문해 놨는데’ 하고 혼자서 웃고 말았다. 어제 꽃바구니를 주문할 때 여사장님이 물었다. 보내는 분을 누구라고 쓸까요? 그래서 한참 후에 이렇게 써 달라고 했다.

남편보다는 영원한 해바라기라고 말이다. 그분도 좋다고 하며 내일 아침 사무실로 보내주시겠다고 했다. 나 역시 하루 일을 하기 위해 내 사무실로 나갔다. 오전 10시가 되자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예, 올 것이 왔다고 하며 전화를 받으니 그 여사장님이 사무실로 오셔서 사모님, 생신 축하드려요 하며 꽃바구니에 케이크까지 가져오셔서 덕분에 온 직원이 생일파티를 했다며 고맙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휴대폰에 메시지를 이렇게 보냈다. 여보,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요. 고생만 시켜서 미안해요. 그리고는 아내의 생일이라는 제목으로 시를 지어 보냈다.

봄내음 가득한 날/아내의 생일이라/작은 맘 정성 다해/보내준 꽃바구니/지나온 삶의 여정에 사랑 날개 젖히네, 이렇게 말이다. 다시금 생각해본다. 고운 인연으로 맺어진 부부 연이 아니던가.

함께 살아 준 것도 감사한 데 남은 시간도 함께 살아갈 수 있으니 행복하지 않을 수 없다. 바라기는 아내의 남은 삶의 여정에 해바라기처럼 밝은 웃음만 넘치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