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에 대한 순정은 역경과 죽음을 이기게 했고
사중복음은 성결교회 설교자들을 활화산처럼 불타오르게 했다

영국은 가는 곳마다 존 웨슬리(J. Wesley)의 흔적이 남아 있다. 웨슬리의 고향인 엡워스(Epworth)로부터, 그가 복음을 전했던 뉴캐슬(New Castle)과 브리스톨(Bristol)을 비롯한 많은 도시들, 그리고 그 유명한 런던의 올더스케이트(Aldersgate) 거리와 웨슬리 채플(Wesley Chapel)에 이르기까지 그의 흔적이 없는 장소란 찾아보기 힘들다.

순연하고 뜨거운 가슴으로

그러나 설교자 웨슬리를 떠올릴때면 이상하게 맨 처음 떠오르는 장소는 영국 중부의 작은 시골마을, 엡워스의 별 볼품없는 한 거리이다. 성탄절을 며칠 앞두고 웨슬리 생가를 찾아가다 우연히 마주친 그 거리는 마켓 크로스(The Market Cross)로, 오늘날로 친다면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시장 삼거리나 사거리와 같은 곳이다.

웨슬리는 회심 후 기회가 닿을 때마다 마을 사거리에서 성경을 높이 들고 설교하곤 했다. 투박한 작은 돌기둥 아래 <존 웨슬리가 자주 설교하던 곳>이라는 기록이 남아있는 그 사거리는, 런던의 단아하게 잘 꾸며진 그의 교회보다 성결을 전하던 설교자 웨슬리의 원래 모습과 훨씬 닮았다.

그러나 그 작은 마을, 시장 거리에서 목청을 높여 외치던 웨슬리의 복음은 미국과 일본을 지나 조선이라는 낯선 땅의 두 젊은이, 김상준, 정빈의 영혼을 흔들었다. 그들은 웨슬리처럼 구령의 열정으로 한 사람은 장등을 들고 한 사람은 북을 치며 “믿기만 하오 믿기만 하오” 외치며 거리를 누볐다.

전혀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영국 설교자의 진리의 도가 낯선 땅 조선에서 두 전도자의 영혼과 맞닿게 되었다는 사실은 실로 신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여기에서 성결교회 설교자의 원형과 정체성을 대면하게 된다.

성결교회 설교자란 어떤 설교자인가? 그는 무엇보다 거리의 설교자들이 가졌던 심장과 불을 가슴에 소유한 이들이다. 그들은 결코 현학적이거나 우물쭈물하거나 사사로운 명예를 좇지 않으며, 오직 순연한 구령의 열정으로 설교하는 전도자이다.

메시지와 설교자의 인격이 분리될 수 없는 것이라 할 때에, 성결의 메시지란 오직 불타는 심장과 가슴을 가진 설교자만이 오롯이 전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성결교회 설교자들이 외치는 진리의 도는 무엇인가? 성결 강단의 메시지는 다른 교단의 메시지와 무엇이 다른가? 이에 대한 올바른 대답을 위해서는 성결교회가 맨 처음 시작되었던 그 지점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 언덕에 가면 우리는 신학, 복음, 역사라는 뿌리깊은 세 나무를 만날 수 있다.    

신학

주지하다시피, 성결교회는 최초의 교단헌법이라 할 수 있는 ⌈조선야소교 동양선교회 성결교회 교리급 조례」(1925년)와 최초의 역사책이라 할 수 있는 ⌈조선 야소교 동양선교회 성결교회 약사」(1929년)에서 밝히듯, 그 신학과 교리가 ‘웨슬리 신학’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교단 신학과 관련된 웨슬리 신학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그리스도인의 완전(성결, 성화, 거룩)에 대한 교리이다. 18세기 영국 웨슬리에 의해 새롭게 이해되고 강조된 이 교리는, 신자의 구원을 중생과 ‘그리스도인의 완전’(성결, 성화)을 단계적 과정으로 보는 시각으로, 이는 성결운동(Holiness Movement)의 원년을 형성했다.

웨슬리는 죄를 내적인 죄와 외적인 죄로 나누고 전자를 부패성, 후자를 자범죄라 칭했다. 여기서 부패성은 죄악의 쓴 뿌리로 자범죄의 원인이 되는데, 중생 이후 성령세례를 통해 이 부패성을 해결하는 것이 성결이다.

웨슬리가 강조하는 성결의 특징은 중생한 신자 안에 아직 남아 있는 ‘죄성(옛 본성, 원죄)에서 정결함’을 얻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능력’을 얻는 것에 있다. 이러한 웨슬리 신학의 핵심적인 강조점인 ‘정결과 능력’의 성령세례는 김상준, 이명직, 김응조의 저술들, 그리고 ⌈활천」, ⌈성결」과 같은 교단의 정기간행물을 통해 계승되어 왔다. 이 성결의 복음은 성결교단과 다른 교단의 강단을 구별짓는 가장 특징적인 메시지로 오늘날 성결강단에서 변함없이 힘있게 선포되어야 하는 메시지이다.

복음

그렇다면 교단의 사중복음은 웨슬리 신학과 어떻게 관련되는가? 엄밀한 의미에서 ‘중생과 성결’은 18세기 웨슬리 신학의 강조점이지만 ‘신유와 재림’을 포함하는 사중복음은 19세기 미국 복음주의 운동의 영향을 받은 만국성결연맹과 밀접하게 관련된 동양선교회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성결교회의 초석을 놓은 정빈과 김상준은 동양선교회(OMS)가 일본에 세운 동경성서학원에서 수학할 당시 사중복음에 깊이 매료되었으며, 귀국 후 복음전도관을 설립하고 처음부터 사중복음을 가르쳤다.

특히 김상준은 1921년 4월 동양선교회와 웨슬리의 성결론을 계승하는 『사중교리』라는 책을 출판하였다. 김상준은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적었다.

“사중교리란 즉 기독교의 허다한 진리 중에서 가장 절요한 진리이니, 즉 신생과 성결과 재림과 신유이다.” 이후 사중복음은 시대에 따른 강조점의 차이는 있었지만, 성결강단의 핵심적인 메시지가 되어 왔다.

비록 사중복음이 다루는 신학적 범주에 관한 논쟁이 다소 존재하지만, 사중복음은 복음의 가장 핵심적인 진리를 함의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곧 사중복음은 거듭남으로 인한 하나님의 백성됨(중생)과 하나님의 백성이 지향해야 하는 거룩한 삶(성결)과 인간의 질병과 이 땅의 고통에 대한 치유의 복음(신유)과 미래에 대한 영원한 소망의 복음(재림)을 담고 있다.

따라서, 교단 100주년을 즈음하여 발족된 <성결교회 신학연구위원회>가 강조하듯, 사중복음은 ‘신학적 사변이 아니라 인간의 가장 실존적인 물음에 대한 성서적인 대답’이라는 평가는 옳다.

사중복음은 교단적일 뿐만 아니라 대중적이며 오늘에도 절실한 현대적인 복음이다. 역사와 사람 성결교회가 이 땅에 뿌리 내린지 110년이 지났다. 동포에게 오직 복음을 전하겠다는 순수한 열정으로 시작된 성결교회는 한 세기를 지나는 동안 교단의 상징인 가시밭의 백합화처럼 일제에 의한 강제해산과 6.25 동란으로 인한 교단 주요 인사의 납북, 그리고 많은 목회자와 교인들의 고난과 순교의 시간을 지나 여기까지 왔다.

공동체란 동일한 경험과 기억을 공유한다 할 때 그들의 이야기는 성결강단을 통해 공유되고 기억되어야 한다. 특히 믿음의 정절을 위해 고초와 죽음을 겪어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더욱 그러하다.

일제 강점기, 강경교회 주일학교 교사 김복희 선생과 57명의 어린이들이 신사참배 거부로 당한 수난 이야기, 박봉진 목사, 김하석 목사, 정태희 장로, 김지봉 집사를 비롯한 많은 이들의 순교 이야기는 성결인의 심비(心碑)에 새겨져야 한다.

또한 한국전쟁 당시 순교한 문준경, 임광호 전도사의 이야기와 48인의 성도가 순교한 임자진리교회, 23명의 성도가 집단학살당한 두암교회, 학생과 유아를 포함해 66인의 성도가 한 구덩이에 생매장된 병촌교회 이야기는 강단을 통해 모든 성결인들이 함께 간직해야 할 유산이다.

설교학자, 찰스 라이스(C. Rice)는 “설교의 목적은 신앙 공동체가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이라 했다. 성결인의 역사에는 참된 신앙의 이야기에 목말라 있는 한국교회에 들려줄 이야기, 황제의 후예가 아니라 고난받는 사도의 후예가 되기를 원했던 자랑스런 이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순정과 열정

교단 역사와 강단을 돌이켜 보건대, 성결교회 설교자의 특징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성결의 복음과 함께 ‘(그리스도에 대한) 순정과 (복음의) 열정’이라 말하고 싶다. 그리스도에 대한 순정은 역경과 죽음을 이기게 했고 사중복음은 그들을 활화산처럼 불타오르게 했다.

김상준은 매일 세 시간씩 기도했으며, 과로한 상태에서 서선(西鮮) 각지에서 부흥회를 인도하다 병세가 악화되어 52세의 나이에 일생을 마쳤다.

성결에 관한 전도지를 매월 수천 장 배부하고 한 달에 8번의 성경공부와 기도회, 4번의 성결집회, 12번의 구령집회를 인도했던 정빈은 순수한 복음전도자로 목사안수를 받지 않고 무명한 전도자의 삶을 살고자 했다. 언젠가 마틴 로이드 존스(M. Lloyd-Jones)는 말했다. “불타지 않는 신학은 결함이 있는 신학이요, 참된 신학은 반드시 불타게 한다.”

1907년 5월 30일, 종로 염곡의 다 쓰러져가는 집에 세워진 ‘동양선교회복음전도관’(東洋宣敎會福音傳道館), 그 허름한 곳, 그 불타는 신학이 우리를 여기까지 이끌고 왔다. 불꽃같은 심장을 가진 정빈, 김상준과 같은 신학자, 설교자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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