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경하는 여러분, 나의 무거운 짐을 여러분이 친절하게도 같이 져주신 데 대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가르친 교리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그의 말씀을 전파하겠다는 것 이외에 아무런 생각도 가지지 않고 가르친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위대하시고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이십니다.” 장 칼뱅(Jean Calvin,1509~1564)은 다가올 죽음을 바라보며 평생을 함께 한 동지들에게 작별의 인사를 남겼다.

▨… 그의 죽음은 “하나님께만 영광을(Soli Deo gloria et laus Deo!)”이라고 부르짖었던 종교개혁자다웠다. 그는 마지막 숨소리가 그칠 때까지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하옴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연고니이다.(시편 39편 9절)”는 말씀을 계속해서 되뇌었고 그의 묘에는 아무런 표식도 하지 말도록 유언을 남겼다. 따라서 오늘 그의 무덤의 정확한 위치는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 칼뱅은 오늘의 신학학위 과정과 같은 정규 신학수업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는 설교자로서 평생 강단을 지켰지만 목사안수를 언제 받았다는 기록은 없다. 그가 쓴 기독교교리의 대집약본인 「기독교강요」의 무게 때문에 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어떤 형태의 투쟁일지라도 마다않은 그의 삶의 실천 때문에 그의 신화적인 위치를 흠잡으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후에 그의 평생 친구였던 베자(Theodor Beza)는 “지상에서 하나님의 교회를 인도하던 가장 큰 빛이 하늘로 돌아갔다”고 술회하기까지 했다.

▨… 누군가는 칼뱅을 ‘제네바의 독재자’로 부르며 그의 종교개혁자로서의 모습에 흠집을 내려했다. 반 칼뱅파들은 세르베투스(Michael Servetus) 화형의 참혹함을 들먹이며 칼뱅이 그 사건에 미온적으로 대처했음을 비난한다. 그 화형사건에 칼뱅이 어느 정도까지 개입할 수 있었느냐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아직까지도 제대로 정리되지 않고 있음이 사실이기는 하다.

▨… 그러나 후대의 신앙인들은 “교회가 점점 잔인해지는데 유순한 정신으로 바뀌어야만 한다. 이는 죄인을 존중하라는 사도 바울의 명령에 따라서, 크게 조심을 해야만 되는 필요성이 항상 있기 때문이다” 라고 당부했던 칼빈의 모습을 알고 있기에 히틀러 같은 독재자와 연관시키려는 행태에 대해서만은 한사코 ‘아니요’라고 거부해왔다. 아무리 ‘법대로’가 우선이라고 하더라도 교회가 잔인해지는 것만은 피해야 하지 않겠는가? 교회정치(총회)의 한계를 이렇게 지적해 두려 한다면, 과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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