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국 목사

5월 가정의 달에는 어머니가 더욱 그립고 때늦은 후회로 마음이 무거워진다. 평생을 고생만 하신 어머니에게 변변한 것, 뭐 하나 해 드린 게 없다. 세월이 지날수록 두 어머니에게 진 빚이 많음도 깨닫는다. 낳아 기르시면서 당신 한 몸을 불살라 주시다가 홀연히 떠나신 어머니와 내 아들딸의 어머니에게 진 부채다.

내 아들딸의 어머니는 어느새 백발이 되어 허리가 구부정하고 뒤뚱대며 걷는 모습이 때로는 어머니로 오버랩 되기도 한다. 겉모습이 어머니의 늘그막 때와 비슷하고 그의 삶 또한 어머니를 닮았다.

그는 어머니처럼 남편과 자식을 위해 희생했고 나의 목회동역자로 평생을 주님께 헌신했다. 철이 드는 건지, 어머니에게 진 사랑의 빚까지 내 자식들의 어머니에게 갚아 주고 싶은 생각이다.

그래서 은퇴한 후엔 요리학원을 일 년 다녔고 주방과 식탁을 맴돌며 그를 돕고 있다.

주일 예배를 마치면 아내와 외식을 하고 돌아왔다. 그 날도 만둣국을 주 메뉴로 하는 식당엘 갔다. 아내는 만둣국을 나는 장국밥을 시켜 막 첫술을 뜨는데 부르지도 않은 주인아주머니가 내 곁으로 다가와 살포시 앉는다.

그 식당엘 자주 다녔어도 주인과는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기에 웬일인가 싶어 수저를 멈췄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가 나직한 목소리로 운을 떼었다. “뵙기에는 좀 까다로우셨을 것 같은데 어떻게 그렇게 자상하세요? 요즘 제가 너무 힘들어서 여쭙는 건데요 기다리면 저에게도 희망이 있을까요?”

다른 사람 귀에는 알 듯 말 듯 한 말이지만 내 귀에는 쏙쏙 들어왔다. ‘이 여인이 남편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하구나, 그동안 내 일거일동을 세심히 관찰하고 있었구나, 나를 보면서 일말의 희망과 기대를 가지게 되었구나’라는 게 내 해석이다.

기운이 없는 아내는 어디를 가든지 내 손을 의지한다. 계단에 오를 때는 더욱 그렇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설 때는 당연히 우리 둘은 손을 잡고 있다. 아내가 벗어놓은 신발은 내가 신발장에 올려놓는다. 그리곤 얼른 그가 앉을 식탁 앞에 방석을 깔아준다.

수저통에서 숟가락과 젓가락을 꺼내 냅킨 한 장 위에 놓아주는 것도 컵에 물을 따르는 것도 내 몫이다. 식사 후 자리에서 일어날 땐 그를 부축하여 일으켜 세운다. 내 이 모습을 여주인이 그동안 주방 안에서 유심히 살폈던 모양이다.

아내는 언제나 만둣국을, 나는 매번 장국밥을 주문하는 것에서 우리 내외의 외식을 위한 식당 선택이 아내위주였음도 그가 짐작했지 싶다.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보세요. 남편분도 내 나이쯤 되면 달라질 겁니다.” 내 이 말에 식당 주인의 얼굴이 조금은 안도의 기색으로 바뀌는 듯 했다.

아내의 손을 잡고 식당 문 밖 계단을 내려오면서 마음이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다. 내가 실천하고 있는 채무변제 일부를 여주인이 알아준 것 때문이었을 것 같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을 때 보람도 기쁨도 생기기 마련이다.  

세월이 지날수록 ‘빚 갚기’가 힘들어진다. 이자가 복리로 늘어서 그런 건 지, “여보! 이것 좀” “여보! 이리 와 봐” 여보! 여보! 여보! 끊임없는 아내의 호출에 피곤할 때가 많다. 그뿐인가, 그가 마신 찻잔조차 개수통에서 뒹굴고 있는 걸 보면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아내가 없었으면 내가 오늘 존재 할 수 있었을까’를 생각하면 고까움이 스르르 녹아내린다.

내 일상 기도에서 빼놓지 않는 것 하나는 “주님! 노약한 아내를 품에서 눈감기고 뒤 따라가게 해 주세요.” 다. 그건 나도 아내도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도가 이루어지는 날에는 두 어머니에게 진 빚에서도 벗어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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