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립 100년이 넘는 성결교회가 25개나 된다는 것은 교회의 역사가 길다는 의미도 있지만 오랜 풍상에 역경을 잘 견뎌온 신앙의 터전임을 말해 준다.  

114년 전 이 땅에 성결교회가 정착된 후 발전을 거듭해 오면서 교회는 많은 고초를 당하였다. 일제시대의 모진 핍박, 참담한 6.25전쟁을 겪으면서도 충성된 성결인들은 죽음을 겁내지 않고 굳건히 교단과 교회를 지켰다.

역사가 100년이 넘는다는 것은 외형적인 교회건물을 연상할 수 있지만 교회를 사랑하는 신앙인들의 땀과 꾸준한 기도가 있었음을 말해 준다.

교회의 역사가 길다는 것은 단순 자랑할 만한 가치가 있지만 이후로도 교회를 발전시키고 지켜나가야 한다는 명제가 주어지는 것이다. 교회발전은 구성원들의 신앙자세도 중요하지만 교회지도자의 변화환경 대처능력여하에 달려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요즘 교인들의 수가 줄어들고 특히 규모가 작은 교회는 더 어렵다고들 한다. 옛 성도들과 같은 뜨거운 신앙을 찾아 볼 수 없고 편하게 신앙생활을 하려는 풍조가 만연한 세상이다.

코로나 감염으로 교인관리가 어려운 가운데서도 꾸준히 교회를 지켜온 교인들이 주일 대예배에 빠지지 않는 것을 보면서 감사한 마음을 가진다.

잘 믿고 잘못 믿고를 떠나 나는 한 교회에서 60년 넘게 성결교인으로 자리매김해 온 것을 자랑으로 생각한다. 고교시절 나의 신앙생활 첫 출발은 가정집에 교회 간판을 단 작은 성결교회였다.

그때는 대구시내 여러 교회에서 부흥회가 많이 열렸다. 대구를 한국의 예루살렘이라고 했던 때였다. 성결교회의 이름 있는 부흥사들이 크고 작은 교회를 불문하고 부흥회를 인도하였다.

이성봉 목사,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장님 목사 등 여러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키가 크고 목소리가 우렁찬 장님 목사는 “물을 마실 때도 성부·성자·성령을 읊조리면서 3번 나누어 마시라”고 가르쳐 주었다.

그 시절의 목사님은 쉽게 가르쳤고 순수했다는 생각이 든다. 주일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교회의 여러 기관을 거치면서 원로장로가 될 때까지 교회에 충성하고자 하는 마음은 변치 않았다.

대구 대광교회의 역사는 68년이다. 4월 11일 창립 68주년을 맞이하면서 장로장립식이 있었다.

동생이 장로 장립을 받던 날 나는 하나님께 깊이 감사했다. 뜨거운 가슴에 울컥했다. 축하객들은 장로가 되는 것은 가문의 영광이라고들 말했다.

60여년 긴 세월동안 한 교회를 지켜온 것과 동생이 나의 뒤를 이어 장로가 된 것에 진정 감사했다. 어쩌다 집안 이야기를 하게 된다. 우리 4형제 중 3명이 교회 장로다.

형은 장로교회 장로, 나와 동생은 성결교회 장로다. 흔히들 한 가문에서 장로가 3명이 나온다는 것은 쉽지 않다는 말을 한다. 나는 장로로서 내 책무를 잘 하고 있는지 되돌아 볼 때가 있다.

다시 말하지만 오직 성결교회에서 60년 이상 신앙생활을 해 온 것을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한다. 대광교회는 지금 많은 변화를 하고 있다.

종전까지 장로 장립, 권사 취임을 할 때는 교회에서 암시하는 헌금을 바쳐야 했다. 그것이 임직 받는 당사자에게는 짐이 되기도 했다. 이런 짐을 덜어주고 편안한 마음으로 종의 직분을 맡게 한 것은 매우 혁신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임직식 비용을 교회가 전적으로 부담한 것은 바람직한 일로 이런 전통이 성결교회 발전과 더불어 전승되었으면 좋겠다. 사람은 사회적인 존재로 우리의 삶은 사회 환경변화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예수님은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누가복음 21:33)’고 말씀하셨다. 옳고 바른 길을 뜻하는 진리는 영원히 변치 않는 덕목이며 예수님은 진리의 표상이다.

교회조직생활을 해야 하는 우리들은 진리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변함없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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