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년에 90세가 되신 어느 노(老) 사모님(87세에 첫 소설집 「유령가족」을 내셨다)께서 ‘미국의 샤갈’로 불리우는 해리 리버만(Harry Lieberman, 1880~1983)을 소개해 주셨다. 워낙 미술에는 문외한인지라 그림이야기라면 경청도 쉽지 않은 처지인데, 그림도 그림이지만 그의 삶의 여정을 곁들여 주는 안내여서 무지한 두눈이 화등잔 만해지는 충격을 받았다. 인간의 삶이 이런 식으로도 열매를 맺을 수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요지경의 세계였다.

▨… 노인요양원에서 무료함을 달래던 77세의 노인에게 지나가던 젊은이가 한마디를 툭 던졌다. ‘심심풀이로 그림이라도 그려보시지요’ 그 한마디가 리버만의 삶을 깨뜨렸다. 81세에 정식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서 101세가 되던 해에 22번 째의 전시회를 가졌으며 103세에 이르기까지 행복한 노년의 삶을 살았다. ‘미국의 샤갈’이라는 비평가들의 평이 지니는 무게를 리버만은 만끽했을까, 궁금증이 꼬리를 이었다.

▨… 그 리버만이 말했다고 한다. “일흔, 여든, 혹은 아흔 살 먹은 사람에게 그 나이가 아직 인생의 말년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몇 년을 더 살지 생각말고 내가 여전히 일을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세요. 무언가 할 일이 있는 것, 그것이 곧 삶입니다.” 유태계다운 매서운 진단 앞에 부끄러움을 감추어야 하는 은퇴 목회자들은 한 분도 안계시는 것인지 살짝 궁금했다.

▨… 추상같은 교단법 때문일까. 아니면 수요는 부족한데 공급은 넘쳐나는 교단 인력의 수급불균형 탓일까. 은퇴한 노목사들은 교단 안에서 더 이상은 필요성이 없는 존재들로 잊혀져 가고 있다. 아직 배움도 녹슬지 않았고, 가능성(potentiality)은 가늠하기조차 어려울만큼 큰 것으로 인정되면서도 은퇴자라는 이름 때문에 자신의 손발을 스스로 묶고 있는 은퇴 목사들의 수를 교단은 파악이나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 물론, 정년 안쪽의 인력도 넘쳐나는 판국에 ‘라떼’만 되뇌이는 은퇴자는 발전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누구나 해리 리버만이 될 수는 없다 하더라도 그 가능성을 썩혀버리기에는 아까운 은퇴목사들을 외면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는 너무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너무 늦은 시작이란 없다”라고 누가 말했는가. 경험과 식견이 쌓인 은퇴 목사들을 외면하는 것은, 리버만의 표현을 빌리면, “그들의 삶을 빼앗는 것”이다. 교단의 정년법이 은퇴자의 삶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빼앗는 것이 된다면, 그래도 지켜야 하는 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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