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 프랑스 문단의 뛰어난 여행작가이자 에세이스트인 실뱅 테송이 쓴 「희망의 발견 : 시베리아의 숲에서」란 책을 읽고 작은 교훈을 얻었다.

책에서 성서적 진리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카뮈의「이방인」이나 혹은 도스토옙스키의「죄와 벌」은 윤리와 사회정의를 교훈적 가르침으로 깨우치게 하곤 한다.

이 책은 2011년 프랑스의 저명한 문학상 중의 하나인 ‘메디치 상’ 에세이 부문 수상작이라고 해서 더욱 관심이 쏠렸고, 제목이 말하듯 과연 시베리아에서 어떤 ‘희망’을 발견했다는 것인가? 하는 관심이 생겼다.

시베리아의 숲에서 발견한 희망은 하나님께서 창조한 아름다운 대자연인가? 아니면 자연에 순응하며 자신의 부족한 존재의 의미를 깨달은 것인가?

그는 삶의 공간을 벗어나 멀리 떨어진, 시베리아 동남부에 위치한 바이칼 호수의 숲속 오두막에서 6개월(겨울과 봄) 동안의 ‘은둔의’ 생활을 체험하며 그를 항상 주눅 들게 했던 읽지 못했던 책들(셰익스피어「한여름 밤의 꿈」을 비롯한 66권)을 독파하기 위해 애썼고 다른 하나는 삶의 속박에서 벗어나 고독과 광활한 공간을 누비고 싶은 자기만의 세계를 가지려 했다.

그는 공간과 시간까지 움직이지 않는 밤만이 존재하는 긴 겨울, 그리고 겨울의 동토가 해빙되면서 생명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호수의 봄을 아주 느긋하게 자기만의 새로운 세계를 그려보려는 희망을 품고 그곳을 찾았다.

그는 왜 사람들은 자신이 창조한 세계의 외부에 있는 신을 믿으려고 할까?라는 하나님 실존에 도전하기도 하고, 햇빛 속에서 전원교향곡을 들으며 스케이트를 즐기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숲은 정적이 감도는 성당이며 국가는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하지만 숲에서는 오직 태고의 법만이 적용된다는 이론을 나열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자신이 자족적 존재임을 깨닫고 아낌없이 베푸는 태양을 누리고 있다는 종교적 감정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래서 “오두막의 삶은 일종의 사포(砂布)이고 영혼의 표피를 벗겨내어 존재를 벌거벗기고, 정신을 야성화하며 몸을 덤불로 덮고 동시에 홀씨만큼이나 민감한 설유두(舌乳頭)들을 가슴 깊은 곳에 펼쳐놓기도 한다”라고 역설한다.

문제는 이 책이 주는 교훈이다. 그는 그 오두막에서 사랑하는 아내로부터 온 이별의 편지를 받고 좌절한다. 그 고통 속에서 그는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확인한다.

이 에세이는 그가 정신적 상처와 침묵과 고독의 심연에서 때로는 행복을, 때로는 절망을 온몸으로 안으면서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되고, 마침내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는 교훈을 준다.

나는 이 책을 접할 때 저자가 이 아름다운 대자연의 숲에서 하나님의 창조적 섭리를 만끽하고 그 오묘함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읽었다. 그러나 나의 기대는 어긋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은둔’과 ‘잃어버린 아내’의 절망이었다.

이 책이 에세이 부문 수상작이 될 수 있었던 내면의 진실은 무엇인가? 아마도 은둔의 세계에 홀로 서며 자연의 순박한 순리에 적응하며 도피와 세속화를 등진 삶이 마치 고상한 순례자와 같이 멋진 나만의 안식처라 생각했지만 ‘은둔’은 아니다. 그리고 가정과 아내와 이별은 더욱 아니다.

그래서 고통과 반성과 후회의 쓴맛을 마시며 뒤늦게 후회하는 자신을 돌아보며 인생의 좌표를 수정하고 시베리아 숲에서 새 희망을 발견했다는 교훈일 것이다.

기독교인의 삶과 비교가치는 없다 하더라도 작은 교훈이 큰 은혜의 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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