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다양한 분야의 독서를 하면서 새로 알게 되어 유익한 것도 많지만 일찍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갖는 것도 많다.

얼마 전 신간은 아니지만, 류모세가 지은「열린다. 성경, 식물 이야기」와 허영업 신부의「성경 속 동물과 식물」을 읽었다.

두 권의 책은 이스라엘에서 자라나는 식물들을 관찰하며 ‘나무와 풀들’에 대한 성서적 의미를 바르게 정리한 것으로 1세기 유대인의 문화와 풍습으로 성경을 이해할 수 있는 눈을 독자에게 열어주었다.  

한 예로, 열왕기상 18장에서 갈멜산에서 바알신을 섬기는 제사장들과 신의 권능을 증명하는 싸움에서 엘리야는 불로 응답하신 여호와를 증명하고 바알신을 섬긴 제사장들을 죽였다.

이후 이세벨이 자신의 목숨을 노린다는 소식을 들은 엘리야는 쫓기는 불안한 마음으로 브엘세바를 지나 광야로 들어가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여호와께 죽기를 간구했다.  

왜, 성경은 엘리야가 광야에 있는 로뎀나무 아래 앉았다고 기록을 했을까? 열왕기상 19장 4절과 5절에서 개역개정성경과 개역한글성경, 표준새번역에는 히브리 발음을 그대로 번역하여 엘리야가 그늘에 앉아 있던 나무를 로뎀나무로 번역하였지만, 공동번역에는 로뎀나무를 싸리나무로 번역하였다.  

로뎀나무는 아라비아 사막, 사하라 사막, 시리아, 팔레스타나 도처의 사막이나 암석지대에서 볼 수 있다. 특히, 사해 부근에 무성하게 자라는 콩과에 속한 비교적 큰 관목으로 잎이 거의 없으나 잔가지가 많아 덤불을 이루어 광야에서 나그네에게 그늘을 만들어 준다.

느티나무처럼 잎이 무성하여 그늘을 만드는 나무가 아니지만 잔가지가 많아 덤불로 만든 그늘을 만들어 쉴 공간을 제공한다.  로뎀나무는 광야의 척박한 환경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싸리나무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잎이 넓은 느티나무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마치 넓은 잎사귀가 태양 빛과 열을 막아주고, 큰 그림자를 만들어 피신한 사람에게 광야에서 좋은 안식처를 제공하는 것으로 상상하여 ‘안식’의 의미가 있는 나무로 생각하는 것 같다.  류모세에 의하면 로뎀나무는 ‘시궁창’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뜻을 알게 되면서, 교회 건물 내의 장소나 기독교 단체나 기관 또는 성도들이 운영하는 곳에서 ‘로뎀의 집’, ‘로뎀나무 카페’, ‘로뎀나무 수양관’으로 명명하여 사용하는 곳이 ‘시궁창의 집’, ‘시궁창 카페’, ‘시궁창 수양관’이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다시 장소의 이름과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사리와 분별력에 대한 사고력을 배양시켜 주고, 지적능력을 향상시켜 줄 방법을 소개한다면 독서이다. 자신의 사고력을 높이고, 정신력을 더 단련시키는 데 있어 훌륭한 방법은 지적능력을 함양할 수 있는 독서이다. 

어떤 책을 읽는가에 따라 사고의 방향과 행동이 좌우되는 경향이 있다. 설교준비를 위하여 어떤 책을 읽느냐에 따라 설교의 해석과 적용이 실제화 되기도 한다.

그러나 독서를 하지 않고 관찰력과 사고력 없이 검증하지 않은 채 유행어처럼 떠도는 말과 글을 인용하다 오류를 낳는 예도 있다.

예를 들자면, 솔로몬의 일천번제이다. 솔로몬의 일천번제는 천일동안 번제를 드린 걸까? 하루에 양 천 마리를 바친 번제일까? 답은 열왕기상 3장 4절과 역대하 1장 6절에 있다.                      

목회자는 성경을 바르게 보는 눈이 필요하다. 그리고 바른 해석과 삶의 적용을 위하여 다양한 양서를 읽어야 한다. 독서는 우리가 세계를 보는 방식을, 또 그 세계관에 따라서 우리가 행동하는 방식을 변화시킨다. 일찍 알았더라면….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