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0일은 마음이 아리도록 슬픈 날로 기억이 되는 수요일이다. 그렇게 아끼고 대견하게 생각했던 제자이며 동료교수였던 권혁승 교수가 죽어간 날이기 때문이다.

그는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으로 있다가 하나님의 부름에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대학원(M.Div.)에 입학했다.

졸업 후에는 예루살렘, 히브리대학에서 공부하여 학위과정(course work)을 마치고,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있을 때 당시 교무처장인 필자는 교수로 미리 오도록 제안했다.

그는 누구보다 성실하고 묵직한 성격으로 인정받는 교수였다. 그런데 6개월간 무서운 암세포와 싸우며 생사의 갈림길에서 신유의 은총을 그토록 애타게 부르짖었는데 결국 세상을 떠났다.

사순절 네 번째 주일을 앞두고 그는 저 하늘나라로 훌쩍 이사를 갔다. 한평생을 주를 위해 살아온 그의 마지막 모습도 천국의 메시지를 전하며 승리자답게 갔다고 한다.

그가 마지막 힘들게 내뱉은 말이 “깃발을 세웠다, 깃대를 꽂았다”였다. 그 후 의식을 잃고 얼굴이 광채를 내며, 어린아이의 보드라운 깨끗한 살결로 바뀌며, 세상의 짐을 다 풀어놓고 평안하고 기쁜 표정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그의 아내가 전해 주었다.

그때 나의 지인이 보내온 ⌈사순절의 묵상⌋이 떠올랐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내 인생에 폭풍이 있었기에 주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며, 가끔 십자가를 지게 해 주셨기에 주님의 마음을 배울 수 있었음을 감사드립니다…. 때때로 가시를 주셔서 잠든 영혼을 깨워 주셨고, 한숨과 눈물도 주셨지만, 그것 때문에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도 배웠습니다. 실수와 실패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겸손을 배웠습니다…. 남과 비교하며 살지 말게 하시고, 질투의 화산 속에 들어가지 말게 하시고, 돈을 목적 삼게 하지 마시고, 으뜸을 자랑으로 여기지 않게 하소서…. 감사의 노래를 내 심장에 주소서 오늘도 주님의 십자가를 사랑하게 하옵소서.”

권 교수는 이렇게 살다가 승리의 깃발을 꽂으며, 훌쩍 저세상으로 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권 교수의 죽음에 직면한 두 딸과 아들과 그 아내를 보며, 가슴이 ‘찡’했다.

그런데 사랑하는 남편의 죽음 앞에, 그녀는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라고 고백을 뱉었다. 이 외마디는 이 세상을 넘어 저 하늘로 향하는 마음의 고백이며 아픔과 고통의 절규이다. 거기서 해답을 찾고 있는 신음이다.

아빠의 죽음, 남편의 죽음 앞에서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언뜻 베드로의 신앙고백에 주셨던 주님 말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가 떠올랐다.

권 교수의 아내가 피를 토하는 슬픔을 삭이며, 먼저 땅에서 풀었다. 왜? 땅에서 풀어야 하늘에서도 풀리니까. 그렇게 남편을 풀어준 거다. 내가 풀면 남편도 풀린다는 걸 알았다. 아내가 먼저 풀었다. 그리고 기도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합니다.”

남편에게 건네는 아내의 마지막 선물 그건 한없이 큰 사랑이었다. 거기서 치유의 눈물이 흐른다. 그게 바로 그리스도인의 고통과 아픔을 이기는 고차원의 비결이며 현실을 받아들이는 미래의 소망이다(합3:17~18).

많은 그리스도인 들이 이러한 믿음으로 승리해 왔다. 우리도 이 고백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심지어는 이 신앙의 자존감을 가지고 수많은 성도들이 단두대에서 순교했다(히11:35~38).

하나님께서 그들을 받으셨고, 영원한 천국에서 가장 큰 영광과 상을 이미 주셨다. 사순절을 지나 부활 절기에서 이 믿음 위에 굳게 서시기 바란다. 오늘의 아픔과 답답함과 두려움을 이 신앙으로 이겨보자.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이 무엇인가? 영생의 구원이다. 그걸 위해 주님은 십자가의 길을 가셨고 부활의 아침을 넘어 영생의 길을 우리에게 열어 놓으셨다.

이를 다시금 우리에게 깨우쳐주는 사순절을 지금 막 지나고 있다. 그 나라에 가서 풀릴 문제의 해답이 참 많은 게 사실이다. 그 날에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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