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나리’는 미국의 배경에서 한국적 소재를 가지고 찍은 영화이다. 이민가족의 애환이 감독의 경험을 소재로 하여 진솔하게 그려져 있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한국사람들의 이야기를 미국식 문법으로 그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보고 클락 케이블이 멋있게 나오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생각났던 것 같다. 

영화에서는 한국적 장치들, 특히 이민사회에서 만나는 한국적 장치들이 많이 등장한다. 한국에서 할머니(윤여정)가 오실 때 이민가방에 먹을 것을 바리바리 싸가지고 오는 모습은 정말 한국식이다.

그 이민가방이라고 하는 것이 한국만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커다란 자루같은 모양의 큰 가방, 그것도 모자라서 중간에 지퍼를 달아서 더 크게 만들 수 있는 가방이다.

아마 이민 가는 사람들이 이삿짐 겸 해서 모든 걸 넣어서 갈 수 있도록 만든 가방인가 보다. 그래서 이름이 이민가방이라고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한국인들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소품이다. 먹고 살겠다고 그 먼 땅으로 떠나야 했던 이방인의 삶이 꾸깃꾸깃 담겨지는 가방이다.

또 다른 추억의 장치들도 있다. 할머니가 아이와 화투를 하는 장면도 재밌었다. '마운틴 듀'를 가지고 산이슬물이라고 하던 것도 재밌었다.

음료의 이름을 한국식으로 직역을 해서는 부르는 이름이다. 그런데 아이들도 할머니도 잘 알아 듣는다. 영화에서는 이렇게 내내 한국식으로 부르는 영어들이 등장한다. 

미나리의 영화적 장치는 뛰어나다. 영화는 한국에서 살지 못하고 미국으로 이민을 가고, 미국 LA에서 살다가 아칸소의 시골로 이사를 가는 변방의 사람들 이야기다. 거기에 한국에 있는 할머니를 모셔와서 함께 사는 한국식 가족애가 돋보인다.

할머니는 미나리 씨를 가져와서는 냇가에 심는다. '아무데서나 잘 자라고,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모두 뜯어 먹을 수 있고, 맛있고, 몸에도 좋은' 미나리 씨를 뿌린다. 그리고 할머니는 흥얼 거린다.

'미나리 미나리 원더풀 미나리' 영화를 보고 나면 이상하게 이 콧노래가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원더풀 미나리' 지극히 한국적인 미나리를 이야기하며 수식어는 영어라는 언발런스 때문이다. 

아마 이 대사는 이민 와서 사는 그 가족에 대한 상징일 것 같습니다.

영화는 기독교적 장치들이 곳곳에 마련되어 있다. 성경에 나오는 야곱의 영어 이름인 주인공 제이콥의 이름도 예사롭지 않다. 성경에 보면 야곱은 개척자의 정신이 뛰어난 사람이고, 고난 가운데서도 축복을 찾아내는 사람이다. 이 주인공의 삶도 다르지 않다. 

교회와 기도가 곳곳에서 나오는 것도 감독의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제이콥을 돕는 사람으로 나오는 폴이다. 폴, 즉 바울 선생은 백인 미국인인데 한국전쟁 참전용사이다. 그걸 빌미로 제이콥의 농장에 일하는 사람이 된다.

그런데 이 사람이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약간은 기독교와 샤먼을 오가는 분위기의 신비주의자이기도 하다. 미국에도 이런 분들이 많은지 모르겠지만, 제가 보기는 한국식 기독교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그러면서 이 가족 가운데 있는 듯, 없는 듯 간간히 보이면서도, 결정적으로는 성령의 임재와 같이 자리한 사람이다. 

마지막 장면은 모든 것을 잃고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이 가족이 마주한 현실이다. 아들의 손에 이끌리어 주인공 제이콥이 찾아간 곳은 할머니가 씨를 뿌려 놓았던 미나리 밭이다.

밭이라고 하기는 그렇고 시냇가에 무성해진 미나리이다. 이방 땅에 와도 끈질기게 살아남아서 풍성해진 미나리가 보여주는 의미가 있다.

아마 이 가족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 같다. 바로 이 마지막 장면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생각이 난다. 영화 마지막에 '그래도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고 하던 스칼렛 오하라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영화는 이민이라는 특수성에서 한국적 장치들을 가지고 미국식 가치관을 보여준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차분히 이야기를 끌고 가며, 미국인들에게는 가장 한국적인 것의 보편성을, 한국인에게는 익숙한 문법에 미국적 가치를 전해준다. 그러면서 신앙이 자리하는 모습은 우리의 인생을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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