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해 서울 강남 고속터미널 앞 구세군 자선냄비에서 스무 걸음쯤 떨어진 곳에 스님이 자리를 폈다. 스님은 시주함을 내놓고 목탁을 두드렸다. 구세군 사람들은 스님을 원망하며 종도 크게 울리고 목소리도 더 높였다. 땅거미가 지자 스님이 자리를 걷더니 구세군 쪽으로 왔다. “옛다. 오늘은 자선냄비가 다 가져가라.” 스님은 시줏돈을 몽땅 냄비에 넣고는 혼잣말처럼 말했다. “가난한 사람 도와야지.”(조선닷컴 만물상, 2011. 12. 7)

▨… 뉴스로 보도된 이 내용을 곱씹으며 법정은 이렇게 썼다. “자기 것이 많아서만 이웃을 돕는 것이 아닙니다. 하루 한 가지라도 이웃에게 착한 일을 한다면, 그날 하루는 헛되이 살지 않고 잘 산 날입니다. 우리가 하루하루 산다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목숨의 신비가 그만큼 닳아진다는 것입니다. 그 소모되는 생명의 신비를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서 인생의 가치가 달라집니다. (…)이웃과 함께하는 인생은 이웃과 함께 영원히 삽니다.” (법정,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

▨… 오늘의 한국사회는 배금주의와 하나님 없는 과학기술이 인간의 비인간화를 조장하고 있다고 진단한다면, 과언일까? 배금주의와 하나님 없는 과학기술의 융합은 인간의 비인간화를 목적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인간의 비인간화 현상을 심화시켜 인간의 사회화는 곧 비인간화라는 방정식을 낳고 있으니 어떻게 부정할 수 있겠는가. 법정의 지적처럼 우리는 이웃이 사라지는 시대에 맞닥뜨려 있는 것이다.

▨… 코로나19의 가장 무서운 부산물은 아마도 ‘이웃이 사라지는 현상’일 것이다. ‘거리는 멀어도 마음은 가깝게’라는 구호로 사회적 거리두기의 부작용을 감추려하지만, 그것은 구호일 뿐 배금주의와 하나님 없는 과학기술에 함몰된 인간의 사회는 너 없는 나의 생존만 차갑게 부추기고 있다. 

▨… 현대를 진단한 신학자(위르겐 몰트만)은 이 시대의 가장 심각한 질병으로 무관심(Apathy)을 꼽았다. 교회를, 이웃을 위한 존재로 파악하는 독일교회 목사다운 진단이라고 해야 할까. “대면예배도, 대면심방도 거의 불가능한데 목회는 어떻게 하시는가” 은퇴목사의 질문에 젊은 목사가 억지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휴대폰이 유일의 무기입니다.” 휴대폰이 비인간화사회의 첨병같은 무관심을 깨뜨리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멀어진 신앙심을 결집시킬 수 있을까? 목회는 역시 불가능에의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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