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 하나님, 저를 용서하소서. 저는 오만하고, 정욕의 노예이며, 탐욕스러운 인간입니다. 저는 권위를 너무 탐하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이 사람들은 저를 보호해 주는 사람들입니다. 저들은 악한 것을 즐기는 저 같은 사람과는 다른, 저들을 돌보아 줄 순교자가 필요합니다.” 「권력과 영광」(그레이엄 그린)의 ‘위스키신부’는 자신의 죽음이 결정될 순간이 다가오자 자신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신부였던가를 자각하는 기도를 드린다.

▨… 사생아를 낳게 만들고, 술을 너무 좋아해서 위스키신부라는 별명도 얻은 이 신부는 자신의 모습을 돌이켜 보며 자신은 연극배우였다고 고개를 떨구었다. 그러나 자신을 체포하려는 경위가 ‘당신은 죽어 순교자가 되려는 것 아니냐’고 묻자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이 주에 단 한 사람이라도 지옥에 갈 사람이 있다면 나도 지옥에 갈 것”이라고.

▨… 자신이 버린 딸, 그 딸을 위해 아무 일도 해줄 수 없다는 사실 앞에서 절망하면서, 위스키신부는 연극배우 같은 모습이 아니라 짐승같은 모습으로 울부짖는다. “오, 하나님, 저는 어떻게 죽어도 좋습니다. 통회하지도 않고 죄 가운데서 죽어도 좋으니 이 아이만은 구원해 주십시오.” 딸을 위해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자리로 나아가게 되는 인간의 한계를, 모순을 그레이엄 그린은 그렇게도 냉혹하게 그려내야만 했던 것일까.

▨… 위스키신부는 자신처럼 쫓기며 숨어 살던 어떤 살인범의 임종을 앞둔 고해성사를 위해 자신이 도망쳐 나왔던 곳으로 되돌아가 결국 체포되어 총살당했다. 그레이엄 그린은 오늘도 우리를 향해 너희들이 본 신(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이 인간에게 보여 주려한 하나님의 뜻은 과연 하나인가를 줄곧 질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어쩌면 믿음의 사람들의 한계와 모순을 더 냉혹하게, 뼈가 시리도록 아프게 지적해준 사람은 F. 니체인지도 모른다. 그는 말했다. “기독교인은 자신의 오른뺨을 때리는 사람에게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왼뺨을 내밀 수 있다. 그 일이 가능한 것은 그 가해자가 반드시 지옥형벌을 받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의 용서와 지옥형벌의 복수가 인간의 한계 안에서 모순없이 공존할 수 있는가. 공존한다면 위스키신부는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인가, 연극배우인가. 헷갈리게 하는 이들은 한국교회에만 있는 것이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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