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트만 박사, “사랑 받고 사랑 할 수 있을때 성결해진다”

몰트만 박사는 지난 5월 1일 첫 번째 강좌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화답하는 삶을 살라"고 강조했다.
몰트만 박사는 지난 5월 1일 첫 번째 강좌에서 ‘하나님은 사랑이다’라는 기독교의 평범한 진리를 신학적 성찰과 경험을 통해 깊이 있게 파고 들었다. 그의 강연의 핵심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화답하는 삶을 살라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첫날 강연에서 몰트만 박사는 “사랑은 가장 강렬한 생명의 경험이고, 가장 강렬한 하나님 경험이다”고 강조했다. 사랑이 있는 바로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고린도서전 13장 ‘사랑 장’으로 강연을 시작한 몰트만 박사는 “고린도 교회에 분열이 일어난 것은 자기 사랑이 지배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면 천사의 말을 하고 하나님의 비밀도 알고 가난한 자들의 형제가 되고 병든 자를 고치신 예수의 뒤를 따를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사랑 안에서는 모든 욕구와 소유, 탐욕이 사라져 온전한 기쁨 가운데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몰트만 박사는 이어 “오직 생명에 대한 사랑만이 생명력을 있게 만든다”고 강조했다. 상호간의 사랑이 서로를 행복하게 만들고 이 땅의 모든 생명체를 존종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생명 사랑은 죽음 사랑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며 오늘날 테러리즘과 핵무기 위협과 빈곤(빈부격차)을 그 예로 들었다. 그는 “테러와 빈부격차 등으로 생명이 위협받고 있는 것은 바로 사랑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죽음에 대한 사랑을 사랑의 결핍으로 해석했으며, 사랑의 결핍은 곧 하나님 경험의 결핍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류 끔찍한 전쟁과 자연재해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결합(확인)할 수 있을까? 몰트만 박사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자신의 경험에서 찾았다. 전쟁(2차 세계대전)의 경험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고 새로운 생명에 눈을 뜨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전쟁 포로라는 가장 절망 속에 있을 때 하나님이 나를 찾아오셨다”며 하나님을 사랑을 경험하는 세 단계를 신학적으로 설명했다.

첫째는 예수의 보내심이다. 이 세상에 보냄 받은 예수는 사랑이 없는 이 세상 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를 만나는 사람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만난다는 주장이다.
두 번째는 예수의 십자가 고난과 자기희생의 죽음을 통한 사랑의 계시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 우리를 위해 고난당하신다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 버림받은 예수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수많은 사람들의 부르짖음을 자신 안에 받아들이셨다”며 우리의 고통과 죽음의 불안 속에 함께 하시기 위해 하나님도 버림받고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 번째는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한 생명을 창조하는 사랑의 힘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단순히 예수가 다시 사셨다는 역사적 사건에 그치지 않고 생명의 거듭남, 즉 생명에 대한 뜨거운 사랑에 사로 잡혀 죽음에 대항하며 생명을 억압하고 파괴하며 죽이는 세력에 대항하게 하는 힘을 준다는 것이다.   
이렇듯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듯이 오늘날 생명을 사랑할 때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 화답할 수 있다고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몰트만 박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게 할 때, 모든 생명들을 거룩하게 한다”면서 “사랑을 받고 사랑할 수 있을 때, 우리의 생명은 성결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인간의 생명이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가? 몰트만 박사는 이에 대해 “인간은 수용되고 긍정되고 존중될 때, 생명력을 갖게 되며, 반대로 거부와 부정을 당할 때 비참하게 병들게 된다”며 “모든 사람은 사랑을 경험해야 하고 공동의 생명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몰트만은 “최초의 오순절 공동체에서 모든 신자가 한마음 한뜻이 되었던 것처럼(행4:32~35절) 기독교 공동체가 상호 신뢰의 장소, 인정의 장소가 되는데 있다”면서 결국 교회가 사회적 사랑의 실재가 되어야 한다고 결론을 맺었다.

5월 2일 ‘하나님의 이름은 정의입니다’라는 두 번째 강연에서 몰트만 박사는 선한 것을 낳고, 악한 것은 악한 것을 낳는다는 끝없는 보복의 법칙을 깨뜨렸다.

하나님의 이름은 정의입니다.
5월 2일 ‘하나님의 이름은 정의입니다’라는 두 번째 강연에서 몰트만 박사는 동서양의 고전과 법칙, 성경을 오가며 서로 분리되어 발전되어 온 상이한 정의 개념들에 대해 고찰하고, 예수가 말한 ‘더 나은 정의’에 대해 설파했다. 
우선, 몰트만 박사는 기존 종교에서 행해지는 희생제의가 그리스도의 사건으로 단숨에 끝났다고 주장했다. 희생제물을 통해 ‘하나님의 진노’가 화해를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를 부인하고 불법을 자행하는 세상과 자기의 화해를 이루신다는 것이다.
또한 인도의 카르마(업보) 이론과 구약성서를 지혜에 대해서도 “우리에게 일어나는 많은 사건들을 우리의 행위의 필연적 결과로 보고, 이 결과를 통해 보응을 받는다고 보았지만 하나님은 선한 것은 선한 것을 낳고, 악한 것은 악한 것을 낳는다는 끝없는 보복의 법칙을 깨뜨렸다”며 하나님의 긍휼로 행위의 결과를 깨트리고 죄와 운명의 억압에서 생명의 미래를 열었다고 주장이다. 

몰트만은 이어 “공자와 모세의 상호성의 법칙도 선한 자에게 상을 주고 악한 자에게 벌을 내림으로써 응보한다는 가르침도 하나님의 정의와는 거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황금율 조차도 억압 당하는 자의 해방이 없고, 약자들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평등하지 않은 세계에서는 상호성의 윤리적 법칙은 승자만 배려하고 희생자, 고난 당하는 자는 고려하지 않는 약점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몰트만은 “하나님의 정의는 창조적이며 구원하고 치유하고 바르게 회복하는 선제적 호의성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몰트만 박사는 이것이 시편과 예언서에서 발견되는 ‘정의의 해’(말 3:20), 곧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에게 빛을 비추어 이들에게 생명을 부여하고 서로 화해시키는 하나님의 의, 예수가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신 ‘보다 나은 의’라고 설명했다. 가령, ‘네 이웃을 사랑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라는 상호성의 윤리가 아니라 악인이나 선인에게 똑같이 해와 비를 주시는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에서 정의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몰트만 박사는 마지막으로 바울의 정의의 이해를 통해, 하나님의 선제적 은혜로 말미암은 죄인의 칭의를 해방시키는 이론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로마서 3:21,23~24은 선과 악에 대한 보응의 정의가 아니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안에서 죄인들을 의롭게 하는 정의”라고 규정했다.
하나님의 새 창조된 정의로 말미암아 ‘정의가 깃들여 있는’ ‘새로운 땅’(벧후 3:13)이 생성돼 이 정의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우리 자신과 함께, 우리의 이웃과 함께, 또 우리의 원수들과 함께 평화를 누리게 된다는 주장이다.

결론적으로 몰트만 박사는  “하나님의 정의는 모든 생명을 돌보시고 위험으로부터 건지고 상처를 치유하며, 폭력으로 인해 고난당하는 이들에게 공의를 세운다”면서 “이러한 정의 안에서 우리는 도래하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확고한 희망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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