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인도에서 영국으로 돌아온 레슬리 뉴비긴의 눈에 비친 영국의 영적인 현실은 그의 선교지였던 인도와 별 다를 바 없었다. 그가 직면했던 몇 가지의 현실적인 문제 중 하나는 세속적인 개인주의 문화가 교회 내에 깊숙이 침투하여 교회가 타자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레슬리는 교회가 타자성을 회복하고, 공공의 선교적 공동체로 거듭나야 할 필요성을 그의 교회론에서 주장한다. 

레슬리의 선교적 교회론에 특이점이 있다면 ‘복음의 공공성’을 강조한 것이었다. 그는 기독교 신앙이 사유화된 것을 비판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공공의 진리라고 여겼다. 그리고 공공의 진리인 복음은 지역 교회의 회중들의 삶과 사역을 통해서 선포된다고 역설했다.

복음이 공공의 진리로 인식되고 선포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핵심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지역 교회와 회중들이 복음으로 완전히 변화된 삶의 모습으로 여러 가지 형태의 사회적 행동과 참여를 통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레슬리의 복음의 공공성은 교회의 공공성으로 확대된다.

교회의 공공성이란 교회가 다원화된 사회 속에서 자신을 사회의 구성원 중 하나라고 인식하고 적극적 사회 참여를 통하여 공공의 선에 기여하는 것이다. 교회는 자신이 속한 지역 사회의 현실을 공감하고 그 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빈곤, 인권, 불평등, 기후, 인종 등)을 성서적으로 접근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본회퍼는 계시의 사회성을 강조한 그의 논문 「행위와 존재」에서 교회는 공동체로 존재하는 그리스도라고 주장했다. 본회퍼의 신학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공동체성은 복음으로 변화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 타자와 함께 누리는 관계에 기초하며, 이 관계는 교회의 울타리를 너머 교회가 속한 지역으로 확대된다. 

세계 교회사와 비교해볼 때 한국교회는 짧은 역사 속에서도 부흥과 성장을 경험하고 세계 선교에도 적잖은 공헌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지나친 이원론적 접근을 통해서 성과 속을 구분하고 신앙과 교회를 사유화하여 기독교 신앙을 교회 안에서 개인적인 차원으로만 영유하려는 경향성이 만연한 것도 사실이다.

예수님이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다”(마 5:13-14)라고 말씀하신 것을 교회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더더욱 중요한 것은 이 말씀의 결론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세상 사람들이)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이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고무적인 현상들이 우리 교단에서 일어나고 있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고 확진자의 수가 다시 증가하면서 코로나 병상 부족현상이 일어나고 있는데, 교단이 노인요양시설인 천안 성결원을 코로나 생활치료 시설로 내놓은 것이다. 신촌교회와 성락교회는 부족한 혈액공급을 위해 성탄전야부터 헌혈 캠페인을 벌였다.

올해 우리 교단은 자연 생태계 복원과 태아 생명 존중 등의 중요한 대 사회적 활동을 단순히 캠페인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그것을 신학적으로 적립하고 실천의 영역으로 확대해 나가고 있다.

탈 교회화 현상이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는 이때에 한국 교회는 최근 출판된 그렉오케슨(Greg Okesson)의「공공의 선교학」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는 포스트-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선교는 다원화된 사회적 생태계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와 사회를 끊이 없이 오가며 상호작용하고, 공공의 영역에 참여하는 것을 통하여 복음이 공공의 진리로 인식되게 하여 사회적 변혁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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